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얼마 전 지인과 대화 도중 “아이 셋이면 버스전용차로 쓸 수 있게 한다던데, 좋겠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기자는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아이 셋 이상 다자녀 가구는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이미 시행 중인 것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럴 만하다. 워낙 대대적으로 보도됐으니 말이다. 2023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세 명 이상의 자녀를 둔 다자녀 가구에 대해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다수의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에 앞선 2023년 5월에도 한 국회의원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한 소식이 알려지며 세간의 주목을 제법 끌었다.

 

“자녀 3명 이상이면 버스전용차로 탄다”… 법안 발의

다자녀가정 ‘버스전용차로 달려볼까’, 다자녀 양육자 혜택 법안 발의

다자녀 혜택 늘어날까...아이 3명 태우면 버스전용차로 이용 가능

정부, 세자녀 이상 가구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 이용’ 검토 중

‘다자녀’ 버스전용차선 탄다

당시 쏟아졌던 헤드라인들이다.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기자에게도 상당히 반가웠던 소식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도 세 아이를 둔 다자녀 가구는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없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정부는 이 정책 추진을 접은 지 오래다. 다각도로 검토했으나 교통안전 문제에 따른 경찰의 강한 반대와 우려로 무산됐다고 한다.

아쉬움이 남지만 교통안전 문제는 결코 간과해선 안 될 최우선 가치이기에 적절한 결정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11인승 승합차를 이용하는 기자는 간혹 기준인원을 충족할 때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 무척 빠르고 편리하지만, 평소보다 많이 긴장하며 운전을 하게 되고 몇 차례 아찔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꽉 막힌 다른 차로와 달리 쌩쌩 달리고 있어 속도 차가 큰 만큼, 끼어드는 차량이나 차로를 벗어나는 차량에 따른 위험이 더 크다. 버스전용차로 이용 차량이 늘어나면 사고 위험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뿐만 아니다. 지금도 버스전용차로에서 버스 간 추돌 등의 사고가 발생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런데 버스 등 대형차량과 일반차량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인명피해는 더욱 거질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안타까운 피해를 입는 일이 우려된다.

이러한 안전 문제 외에도 현실적인 걸림돌이 많다. 이용 대상 다자녀 가구 차량을 가려내는 것부터 쉽지 않은 문제고, 불법 이용 차량이 크게 늘어나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버스전용차로가 본래의 취지 및 효과를 상실할 수 있는 문제도 있다.

물론 다자녀 가구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하는 취지는 좋다. 저출생 인구절벽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고민이자 노력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가벼운 접근이나 실현 가능성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는 선심성 발표는 해악이 더 크다.

얼마 뒤면 막내가 세 돌을 맞는다. 세 아이의 아빠이자 세 자녀 다자녀 가구가 된지도 만 3년이 다가오고 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무렵부터 돌이켜보면 육아 관련 지원이나 제도는 정말 많이 좋아졌다. 다만, 말만 번지르르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모두를 혹하게 하지만 정작 실현되지 않거나, 실효성 및 지속성이 없다면 혼란과 허탈함만 키울 뿐이다. 법안이나 정책을 검토하고 알리는데 있어 보다 면밀하고 세심한 접근과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