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의 낙엽들 벌써 거름 되었다/ 내가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작년의 씨앗들 벌써 꽃 되었다/ 내가 꽃밭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후딱, 1년이 지나갔다/ 돌아서서 나는/ 고개를 팍, 꺾었다”천양희 시인의 일세. 기해년 시작이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시인의 말처럼 1년이 ‘후딱’ 가버렸네. 흔히 세월은 나이 속도로 달린다고 말하지만 체감 속도는 더 빠른 것 같아. 게다가 가속도까지 붙으니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가 없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자니 크게 다칠 것 같고. 그래서 ‘어허’ 하다 보니 내일 모레가 경
혹시 2015년 5월 40번째 편지에서 소개한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를 기억하는가? 92세에 아들의 권유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98세에 펴낸 첫 시집 ‘약해지지 마’가 일본에서만 160만부가 넘게 팔린 초베스트셀러가 됐다는 말을 했지. 그러면서 ‘약해지지 마’라는 시를 소개했고. 약해지기 쉬운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는 시이니 다시 한 번 읽고 시작하세.“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
지난 20일 영국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네. 기후 비상사태란 ‘기후 변화로 인한 잠재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환경피해를 피하기 위해 더 긴급한 행동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뜻일세. 올해 최종 후보 명단에 오른 단어들에는 ‘기후 위기(climate crisis)’, '기후 대응행동(climate action)’, '멸종(extinction)‘, '비행 수치(flight shame)’, '지구 가열(global heating)’, ‘식물성
지금 지구의 반대쪽에 있는 남미 칠레에서는 지하철 요금 인상에 반대해서 시작된 시위가 거의 한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네. 수도 산티아고에 비상상태가 선포되고 야간 통행금지 조치가 내려졌지만 시위는 오히려 더 격렬해졌다는군. 그래서 정부는 산티아고에서 열릴 예정이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25)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네. 정부가 지하철 요금 인상을 철회하고, 노동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서민들의 민생고를 완화하는 정책 변화를 발
벌써 낙엽이 한 잎 두 잎 바람에 휘날리는 스산한 늦가을이구먼. 눈을 감고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들을 하나 둘 떠올려도 좋은 계절이네. 오늘은 대한민국이 매우 빠른 속도로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를 겪으면서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고.이제는 도저히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아름답던 삼천리강산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내가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이미 허울만 남은 ‘염치’일세. 염치(廉恥)가 뭔가.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지. 맹자가 말한 ‘수오지심’이 바로 염치일세
요즘처럼 시절이 하 수상할 때도 읽을 수 있는 시가 있어 즐겁고, 찾아가 만날 수 있는 야생화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올해는 다른 해보다 더 자주 만항재에 다녀왔네.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 영월군이 만나는 함백산 자락에 위치한 만항재는 해발 1,330m에 위치한 한국 최대 규모의 야생화 군락지로도 유명하지. 5월 초순이면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에 많은 족두리풀들이 꽃을 피우네. 먼저 정희성의 시인의 을 읽고 야생화 이야기를 계속하세.자세를 낮추시라/ 이 숲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여기는 풀꽃
이른바 ‘조국논란’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계층화가 심각하다는 게 드러났네. 부모의 권력이나 재산,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자식의 미래가 결정되는 대물림이 실재한다는 것을 거의 모든 국민들이 알게 되었어. 그래서 분노한 일부 명문대생들이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고, 보수 언론들은 세대론을 통해 ‘86세대’를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비난했네. 아직도 철지난 세대론이라니… 내 눈에는 보수 언론과 지식인들도 대부분 위선자들이네.먼저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이 에 쓴 칼럼의 한 부분부터
지난 한달 너무 뜨거운 시간이었네. 평균 기온은 작년보다 좀 낮았지만, 이른바 ‘조국 논란’으로 8월 초부터 한국사회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싸웠으니 뜨겁지 않을 수 없었지. 대한민국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뜨거운(hot) 사회의 전형일세.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투쟁이 그치지 않는, 그래서 엄청나게 시끄럽고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대한민국. 나이 들어 이런 사회에서 사는 게 마음 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괜찮아. 새로 알게 되는 것도 많거든.
세상 돌아가는 게 하수상하고 답답해서 지난 며칠 동안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인이며 시인이었던 굴원(屈原)의 를 읽고 또 읽었네. 예전 입시 공부하면서 읽을 때와는 완전히 느낌이 다르더군. 어부사는 삼려대부라는 고위직에 있었던 굴원이 기득권 세력인 귀족들과 싸우다가 패해 유배 갔던 상강(湘江)에서 만난 어부와의 대화를 시로 적은 거야.초췌한 얼굴로 강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고 있는 굴원에게 어부는 왜 벼슬에서 쫓겨났냐고 묻네. “세상이 모두 혼탁할 때 나 혼자 맑았고, 뭇사람들이 모두 취했을 때 나만 홀로 깨어있
몇 번 고백했듯이 난 세상이 하수상하고 마음이 심란할 때는 시집을 찾네. 젊었을 때부터 익힌 나만의 마음 달래기 방법이지.“한국의 지도자가 무지해서 한일관계의 모든 것을 파괴한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 총리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엄마부대’ 대표의 말이 방송에 나오고, 일제의 강제징용 만행을 “식민지배 기간에 많은 젊은이들이 돈을 좇아 조선보다 앞선 일본에 대한 ‘로망’을 자발적으로 실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쩌다가 살게 되었는지… 아무리 화가 나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지난번 편지에서 우리 사회의 반노동조합 정서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아 유럽연합이 제재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을 했었네. ‘ILO 핵심협약’이라니? 우리 국민들 중에 그게 무얼 말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끔 신문이나 방송에서 ‘ILO 핵심협약’에 관한 뉴스를 접해도 자신과는 별로 관계없는 일이라 여기고 그냥 무시해버린 사람들도 많을 걸세. 우리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제 협약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관심이 없는 거지.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방송이나 신문 등 다양한 언론 매체나 여행 등을 통해 서구 복지국가 시민들이 살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네. 책에서만 보았던 복지국가에 관해 조금씩 알아 가면서 그런 나라 사람들의 안정된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예전보다 훨씬 더 많아. 고무적인 현상이지.하지만 그런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이 부족한 것 같네. 국가 권력과 자본이 원하는 대로 열심히 일만 하면 ‘마음씨 좋은’ 정치인들의 노력과 ‘착한’ 부자들의 통 큰 기부 등을 통해 대한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 법정 스님의 『무소유』다음으로 내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던 책은 어떤 것일까? 중학교 다닐 때부터 시와 소설 등 문학 작품 읽기를 좋아했고, 대학에서는 영문학, 대학원에서는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책들을 읽었네. 10여 년 전부터는 장자와 노자, 불교 관련 책들도 즐겨 찾고 있으며, 사진 공부하면서는 사진과 예술 관련 책들도 많이 읽고 있지. 하지만 공식적인 노인이 된 지금 내가 살아온 긴 여정을 뒤돌아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각과 사유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친구야, 영어 문장으로 시작해서 미안하지만, “Root, hog, or die.”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자연에서처럼 사회에도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19세기 말 사회진화론자들이 좋아했던 생명의 법칙이야. “재빨리 선수 치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 살벌하지? 아니야? 지금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삶의 법칙이니 새로울 게 없다고… 그럴지도 모르지. 우리들의 삶 자체가 ‘이빨과 발톱으로 붉게 물든’ 전쟁터로 바뀐 지 꽤 오래되었으니까.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가 ‘
지난주에는 3박 4일 동안 카메라 메고 경상남도 거제, 전라남도 순천, 경상북도 문경에 다녀왔네. 1년 예정으로 새로운 사진 프로젝트 ‘30인보’를 시작했기 때문이야. 전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연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밥 먹고 놀면서 카메라에 담는 작업이지. 지인들에게 소개 받거나 길을 가다가 만난, 생전 처음 보는 사람 30명을 담을 예정이어서 프로젝트 제목이‘30인보’일세. 흥미롭지 않겠는가? 60년 이상 살면서 전혀 만나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을 공식적인 노인이 된 나이에 만나 어떤 식으로든 함께하는 시간을
[시사위크] 먼저, 내가 기분이 울적할 때 자주 읊는 황인숙 시인의 이네. 혼자 중얼거리지 말고 가슴 확 펴고 큰 소리로 함께 읽어보세.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어떤가? 기분이 상
[시사위크] 정부가 현행 65세인 노인 복지제도의 기준 연령을 70세로 올리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같네. 보건복지부는 4월 10일 ‘제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19-2023년)’을 발표하면서 노인의료비 감면제도인 ‘노인외래정액제’의 적용 나이를 현재 만 65세에서 단계적으로 만 70세까지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네. 이 제도는 만 65세 이상 환자가 의원급 동네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거나 약국에서 조제를 받을 때, 총 진료비(건강보험 적용기준)가 1만5,000원 이하면 1,500원, 1만5,000 초과 ~ 2만원
[시사위크] 《장자》에는 정치권력에 대한 장자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두 우화가 나오네.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유롭게 살았던 장자에게 권력이나 부귀영화는 다 헛된 것이었지. 권불십년(權不十年)이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임을 알고 권력과 부를 멀리 했다고나 할까.장자가 복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을 때, 초나라의 왕이 보낸 두 대부가 찾아와 나랏일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네. 그때 장자는 낚싯대를 쥔 채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하지. “내가 듣기로는 초나라에 죽은 지 삼천 년이나 된 신령한 거북이 비단으로 싸여 사당 위에 소중하게 보관되
[시사위크] 먼저 촉나라 개는 해를 보고 짖는다는 촉견폐일(蜀犬吠日)이라는 사자성어는 알지? 중국 촉(蜀)지방이 어딘가. 우리나라 임시정부 청사가 있는 중칭직할시와 쓰촨성(四川省)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많이 읽는 『삼국지연의』의 주인공들인 유비, 관우, 장비와 제갈공명의 나라가 촉나라일세. 그 촉(蜀) 지방이 예전부터 비가 오는 날이 많아서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들었다네. 쓰촨성(四川省) 이름 그대로 강과 협곡이 많으니 그곳에 사는 개들이 해를 보기 힘들었던 것은 당연하지. 그래서 간혹 해가 구름 사이
[시사위크] 닷새 동안 제주 올레길을 걷고 왔네. 제주도의 계절은 벌써 봄이더군. 가장 추운 날 아침 기온도 영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고 일평균기온이 10도를 오르내렸으니 봄이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바람이 없는 돌담길을 걸을 때는 얼굴과 등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따뜻한 봄날의 연속이었네. 그래서 추운지 모르고 봄꽃 향기 맡으며 걷고 또 걸을 수 있었지. 봄에 취해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하루 평균 20km 이상 걸었으니 우리 나이에 대단한 것 아닌가? ‘걷는 음유시인’이라 일컫는 프랑스의 동식물학자 이브 파칼레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