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분야만큼 빠르게 기술이 뜨고 지는 산업분야도 없을 듯하다. 어제 잘나갔던 기술이 오늘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몰락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때문에 지속적인 ICT기술 발전을 위해선기업과 국가들의 글로벌 표준특허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사진=Getty images,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이나 무리가 살아남는다’를 의미의 ‘적자생존’은 우리에게 진화론 등 생물학 용어로 익숙하지만, 엄밀히는 어떤 기업이나 국가에도 적용 가능한 사회학 용어다. 시장경쟁에서 도태된 기업이나 국가는 결국 경쟁력을 잃고 힘이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현재 ICT시장은 4차 산업혁명,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누구나 새롭게 진출할 수 있으며, 성공가능성이 높은 ‘블루오션’ 시장이 활발히 생성되고 있다.

하지만 ‘풍요로운 시장’으로 보이는 현재의 ICT시장에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존의 ‘구식’ 기술들은 시장에서 도태돼 사라지고, 그 자리를 새로운 IT기술들이 차지한다. 

물론 현재 잘나가는 IT기술들도 언제까지 그 왕좌를 차지하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시장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자 우리나라를 포함한 글로벌 ICT기업들은 ‘ICT표준특허’를 두고 ‘총성 없는 전쟁’을 진행 중인 이유다.

◇ “ICT 표준특허 확보가 곧 글로벌 ICT시장 영향력”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가 발간한 ‘ICT표준화 활동 가이드’에 따르면 ICT표준화가 필요한 이유는 이론적으론 ‘상호운용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ICT기술을 표준화하면 상호연관성이 높은 ICT분야에서 호환성, 상호운용성을 제공해 다른 ICT기기나 기술간에 정보교환 및 처리가 가능하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통일되고 검증된 정보의 제공해 소비자의 편의성을 높이며, 기업들에겐 기술의 중복투자 방지, 기술이전 등을 촉진해 생산·거래 비용 등을 줄여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이점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ICT표준특허를 확보하는 것이 국가와 기업에 ‘큰 수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허는 특허권자에게 발명 기술을 독점적 사용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표준화가 초기시장 장악을 통한 국제 시장 선점이라는 전략적 수단으로 강조되고 있는 이유다.

특히 표준특허의 경우 국제표준화기구에서 표준기술을 정해 발급하는 특허로 제품의 제조 및 판매나 서비스 제공과정에서 표준특허 내용을 회피해 설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새로운 서비스를 판매하고자 하는 기업은 표준특허를 등록한 기업이나 국가에 로열티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ICT분야는 기존 전통산업과 다르게 굉장히 많은 기술 분야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5G통신의 경우, 자율주행, AI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데, 여기서 5G기술 일부 중 표준특허를 등록할 수 있다면 다른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들은 이에 대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이를 통해 특허를 등록한 기업 및 국가는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Getty images

예를 들어 SK텔레콤이나 KT, LG유플러스와 같은 이동통신사들이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때를 생각해보자. 여기서 통신망 네트워크 자체는 통신사들이 제공하겠지만, 원활한 통신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네트워크 슬라이싱·밀리미터파·통신기기 등 수많은 ICT기술이 필요하다. 

이 같은 통신서비스 방식은 국내 통신사들에만 한정적인 것이 아닌 전 세계 통신사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여기서 국내통신사 혹은 연구원에서 통신서비스에 필수적인 ICT기술의 국제 표준을 만들고, 이를 특허를 낸다면 세계 통신시장에선 해당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우리에게 지불해야 한다.  

특히 전문가들은 향후 전 ICT분야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5세대 이동통신 5G의 표준특허 확보 경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9일 온라인으로 개최한 ‘ICT 표준특허전략 컨퍼러스’에서 ‘표준특허 R&D 활용 전략’을 발표한 정보통신기획평가원 김명헌 책임연구원이 발표에 따르면 5G관련 특허의 쏠림 현상은 심화되고 있는 추세다. 김명헌 책임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ICT신기술에 대한 세계 특허등록건수는 지난 2015년에 비해 약 12배 이상 증가했다. 여기서 5G 관련 특허는 2016년에 비해 약 7배 정도 증가했다.

김명헌 책임연구원은 “5G이동통신의 표준기술의 활용이 휴대전화에서 자동차, 가전 등 전 산업분야로 확대되면서 해외 지출 표준특허 로열티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정부도 한국판 뉴딜을 통해 국가 행정에 5G·AI를 접목시킬 예정이며, 5G 기술 사용 분야 확대에 따른 로열티 분쟁 발생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이에 대한 대응 전략 사업을 추진 중이다”라고 말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 김명헌 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ICT신기술에 대한 세계 특허등록건수는 지난 2015년에 비해 약 12배 이상 증가했다. 여기서 5G 관련 특허는 2016년에 비해 약 7배 정도 증가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 김명헌 연구원 발표자료

◇ “韓 ICT표준특허, 객관적 검증 절차 부재와 분쟁 발생 우려” 

이처럼 ICT분야의 표준특허 확보가 향후 글로벌 ICT시장, 특히 5G분야 선두 확보의 핵심 열쇠가 될 것임이 분명함에도 우리나라의 5G통신 분야 ICT표준특허 확보 상황은 좋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명헌 책임연구원이 지적한 ICT표준특허 현황에 대한 첫 번째 문제점은 ‘투명하지 않은 선언 표준특허’다. 기업들이 표준특허를 선언(신고)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연관성에 대한 표준특허와 표준 규격의 일치여부의 객관적 검증 절차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김명헌 책임연구원은 “실제 표준규격과 일치하는 선언표준특허는 전체 20%에서 60%에 불과하다”며 “일본 사이버 창의력 연구소(Cyber Creative Institute)에 따르면 4G이동통신 선언 표준 중 56%만이 필수성이 있다고 분석했으며, 미국의 IT기업 Grey and Amplified도 5G이동통신 선언특허 6,402건 중 필수성 있는 특허는 1,658건으로 전체 26%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과도한 로열티 지불 및 분쟁발생 우려다. 표준특허에 대한 인적·물적자원 등이 부족한 국내 ICT중소·중견기업의 경우, 특허권자의 표준특허 침해에 대한 대응 한계로 인해 과도한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명헌 책임연구원은 “중소기업의 경우 표준특허침해 경고를 받을 시 대응보다는 분쟁을 제기한 특허권자 및 대리인과 소송전 합의를 통해 손해배상액 지급 또는 약정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ICT표준특허와 관련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보통신기획평가원과 함께 과기정통부, 특허청 등 관계 부처는  ‘2021년도 ICT R&D 우수 IP창출활용지원’을 추진한다는 목표다. ICT분야 표준특허 분석 및 표준특허 창출 등의 지원을 통해 4차 산업혁명 기술 융복합화에 따른 국내 ICT기술 및 산업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다.

해당 사업은 5개의 과제로 진행되며, 내년 총 15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세부적으로는 △ICT 표준필수특허 분석 및 창출 △ICT표준필수특허 검증 분야에 각각 7억5,000만원의 예산이 내년에 지원된다. 

'ICT 표준필수특허 분석 및 창출' 부문의 경우, 유럽전기통신표준기구(ETSI)에 등록된 5G등 ICT신기술의 표준필수특허 연구를 통한 분석 및 신규 표준특허창출을 추진하며 종합분석은 연구소 등 비영리기관에서, 기술 분석은 대학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ICT표준필수특허 검증' 부문은 표준특허권자의 라이센스 경고장에 대한 적정 로열티 산정 및 분석 지원을 통해 ICT중소·중견기업의 R&D 기술사업 확산을 돕는다. 수행기관은 비영리 기관이 맡게 되며 주요 지원분야는 △미래통신 및 전파 △소프트웨어 및 AI △방송 및 콘텐츠 △차세대 보안 △디바이스 △블록체인 등 ICT 6대 기술 전 분야다.

김명헌 책임연구원은 “라이센싱 및 로열티 관련 전략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들을 ICT R&D 우수 IP창출활용지원 사업을 통해 지원할 경우, 중소·중견기업들의 해외 진출 로열티 지급 감소하는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한다“며 “표준특허 분쟁 단계에서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이 표준특허 분석 결과를 제공하면 신속한 합의 및 조기 분쟁해결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어 “표준특허 창출 및 R&D 기초자료를 기반의 기술 분석을 통해 공백 영역의 신규 표준특허 발굴과 차세대 이동통신 연구개발에 활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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