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위기’다. 최근 부쩍 더 많이 들려오는 얘기다. 청년 인구의 수도권 이탈,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지방 소멸위기론’까지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노인만 남은 마을은 소멸 위기를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마을, 나아가 지역의 붕괴는 지방자치 안정성을 흔들고, 나라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엄중한 위기의식을 갖고 적합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시사위크>에선 이 같은 시각 아래 현 위기 상황을 진단해보고 과제를 발굴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많은 청년들이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 그런데 수도권 삶은 청년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있을까.
많은 청년들이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 그런데 수도권 삶은 청년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사람은 태어나면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라.” 오래된 속담 구절이다. 한양이 서울로 이름이 바뀐 뒤엔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라는 구절로 자연스럽게 바뀌어 쓰이고 있다. 이 속담엔 많은 사람이 모이는 수도에서 배움을 얻고 기회를 찾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 사회의 서울 선호는 현대에 접어들며 더욱 뚜렷해졌다. 서울에 모든 인프라와 일자리가 집중된 영향이다. 이는 청년들이 서울에 살고 싶어 하는 배경이자, 지방의 청년인구가 이탈하는 원인이 됐다. 

◇ “당신의 ‘서울살이’ 행복한가요?” 

그런데 청년들의 ‘서울살이’가 행복할까. 높은 주거비, 치열한 경쟁에 따른 압박, 관계의 단절. ‘서울공화국’ 아래 청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또 다른 단면을 고려하면 마냥 고개를 끄덕이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고질의 일자리는 한정돼 있고 서울에 집 한 칸을 마련하는 것도 녹록지 않다. N포세대(주거·취업·결혼·출산 등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하는 2030 청년세대)가 등장한 것도 수도권 인구집중에 따른 부작용과 무관치 않다고 평가된다. 

그렇다면 발상의 전환을 해보면 어떨까.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는 시도를 말이다. 실제로 로컬(지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는 청년들의 사례가 적지 않다. 수도권을 떠나 지역에서 배움과 일자리, 그리고 ‘나다움’의 가치를 찾아가는 청년들이 지역 곳곳에 등장한 것이다.

전남 완도가 고향인 20대 청년 김유솔(26) 씨는 2019년 초 고향으로 돌아왔다. 초·중·고를 고향에서 보낸 뒤 서울로 올라가 회사생활을 했던 김유솔 씨는 그해 고향 마을에 사진관을 열었다. ‘죽어도 서울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치열한 서울생활을 했다는 김유솔 씨. 그는 왜 고향으로 돌아왔을까.

김유솔 씨는 <시사위크>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서울에 올라가니까 사람이 많았다”며 “어느 순간 내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서울에선) 그저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고향에 잠깐 쉬러 왔는데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예전엔 완도를 생각하면 ‘갈 데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쉬려고 내려왔더니 참 좋았다. 내가 그동안 ‘완도를 안 좋게만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관은 열게 된 것은 학창시절부터 품었던 아쉬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유솔 씨는 “학교 다닐 때 지역엔 오래된 사진관 한 곳 밖에 없었다. (보정이 없다보니) 로또를 뽑는 심경으로 사진관에 가야 했다”며 “내가 완도에 내려갈 때마다 지인들의 사진을 찍어주곤 했는데 친구들이 ‘네가 내려와서 사진관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종종 했다. 이러한 말이 마음에 남아있었던 같다”고 말했다. 

김유솔 씨(사진 왼쪽에서 세번째)는 완도 토박이 20대 청년들과 ‘완망진창’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다양한 지역 내 공동체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완망진창
김유솔 씨(사진 왼쪽에서 세번째)는 완도 토박이 20대 청년들과 ‘완망진창’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다양한 지역 내 공동체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완망진창

이후 김유솔 씨는 서울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지역 내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사진관을 오픈한 해 말, 우연히 도시재생대학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마을재생과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 서울에서 지방으로… 로컬에서 기회 찾은 청년들 

이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김유솔 씨는 올해 초 청년단체 ‘완망진창’을 만들고 지역 청년들과 각종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완망진창(대표 김유솔)’은 20대 완도 토박이 청년들로 구성돼 주체적, 자발적 활동으로 지역의 청년문화를 이끌어간다는 목표 아래 만들어졌다고 한다. 

단체명을 완망진창으로 짓게 된 배경에 대해선 “‘완도와 엉망진창을 합친 단어”라며 “팀원들 대부분이 20대 초반인데, 이런 사업을 해본 경험도 없고 어디에 속해 본 적도 없기에 모든 게 서툴다. 그래서 시행착오 속에서 성장해보자는 의미를 담아 단체명을 짓게 됐다”고 전했다. 

올해 초 완망진창은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가 주관하는 ‘2022년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에 참여하면서 △청년지도 제작 △‘8844’ 플리마켓 개최 △생소한 취미수업 △‘아무튼 완생’ 영상 제작 등 활발한 활동도 펼쳤다. 아울러 지난 6월엔 ‘2022년 전남형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 사업에 ‘완망진창’이 제안한 사업이 선정되면서 활동의 폭을 넓혔다. ‘전남형 청년마을 만들기’는 전남도가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으로 행안부의 ‘청년마을 지원 사업’에 착안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완망진창은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에 선정되면서 플리마켓 개최, 생소한 취미수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기획·추진했다. / 완망진창
완망진창은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에 선정되면서 플리마켓 개최, 생소한 취미수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기획·추진했다. / 완망진창

김유솔 씨의 활동은 타지로 떠난 고향 친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김유솔 씨는 “내가 지역에 사진관을 열고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은 친구들이 많았다”며 “완도에 가게를 열고 싶다고 묻는 친구도 있었고 광주에 살다가 내려온 친구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유솔 씨는 올해 1월 고향 완도읍 용암마을의 최연소 여성 이장이 됐다. 김유솔 씨는 “마을 주민들의 응원 아래, 이장직을 맡게 됐다”며 “전(前) 이장님이나 주민들이 마을 일을 많이 도와주신다”고 말했다. 향후 청년마을 사업과 관련해선 “마을 이름은 ‘모인도’라고 지었다”며 “많은 사람이 모이는 섬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반영됐다. 완도와의 특성을 살려 지역살이, 네트워크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지방에 내려오면 실패?… 편견을 깨면 길이 보인다 

김유솔 씨처럼 도시를 떠나 지역에서 새로운 일과 가치를 찾고 마을공동체 살리기에도 나서는 청년들의 사례는 적지 않다. 행정안전부가 7일부터 9일까지 충남 공주시 하숙마을에서 개최한 ‘청년마을 성과공유회’ 행사에선 이러한 사례를 다수 접해볼 수 있었다. 

행안부가 주관하는 ‘청년마을 지원사업’은 지역 청년들의 유출을 방지하고 외지 청년들의 지역 정착을 지원해 청년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고 지역엔 활력을 높이는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사업이다. 청년마을은 2018년 목포 ‘괜찮아마을’을 시작으로 2019년 서천 ‘삶기술학교’, 2020년 문경 ‘달빛탐사대’의 시범기간을 거쳐 지난해부터 전국으로 확대돼 추진되고 있다. 올해까지 모두 27개의 청년마을 사업이 전국 곳곳에 시행됐다. 

‘로컬이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최근 ‘청년마을 성과공유회’ 행사엔 청년마을 27개 팀과 국내외 로컬 분야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해당 행사는 청년마을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고 지속 가능한 청년마을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청년들의 자유로운 교류를 돕기 위해 마련됐다.  

사흘간 진행된 이번 행사에 기자는 8일 현장을 방문했다. 이날 행사 오전엔 ‘공간의 미래, 마을의 미래’라는 주제로 박희윤 현대산업개발 영업개발본부장과 권오상 퍼즐랩 대표(공주 청년마을 자유도 대표), 이지현 농업법인회사 ㈜뭐하농대표(충북 괴산 청년마을 ‘뭐하농스’ 대표)의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다. 

지난 8일 충남 공주시 하숙마을에서 개최된 ‘청년마을 성과공유회’ 행사에서 ‘공간의 미래, 마을의 미래’라는 주제로 박희윤 현대산업개발 개발영업본부장과 권오상 퍼즐랩 대표(공주 청년마을 자유도 대표), 이지현 농업법인회사 ㈜뭐하농대표(충북 괴산 청년마을 ‘뭐하농스’ 대표)의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다. / 공주=이미정 기자
지난 8일 충남 공주시 하숙마을에서 개최된 ‘청년마을 성과공유회’ 행사에서 ‘공간의 미래, 마을의 미래’라는 주제로 박희윤 현대산업개발 개발영업본부장과 권오상 퍼즐랩 대표(공주 청년마을 자유도 대표), 이지현 농업법인회사 ㈜뭐하농대표(충북 괴산 청년마을 ‘뭐하농스’ 대표)의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다. / 공주=이미정 기자

오후엔 22개의 청년마을 대표들이 △청년농부 △지역관광 △지역예술 △지역공동체 △일거리 실험 등 5개 분야로 나눠 토론장을 개설, 지역청년들과 함께 청년마을 사업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도 마련됐다. 청년마을 사업 참여자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성과, 애로사항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자유롭게 이뤄졌다. 

청년단체 및 청년마을 사업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출신은 다양했다. 지역 출신 청년도 있었고 서울이나 타지 출신들도 상당했다. 특히 이날 오전 발제자로 나섰던 ‘청년농부’ 이지현 대표의 귀농 계기와 지역 정착 경험이 귀를 사로잡았다. 

이지현 대표는 서울에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으로 일하다 2017년 귀농을 결심하며 남편과 충북 괴산의 한 마을에 정착했다. 이 대표가 귀촌을 결심했을 때 농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였다고 한다. ‘너의 경력과 능력이 아까워’라고 바라보는 시선과, ‘네가 도시에서 실패했으니까 시골로 갔지’라는 시선으로 나눠졌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굉장히 불쾌하고 화가 났다고 토로했다. 이 대표는 “이러한 시선은 농촌을 굉장히 비하하는 것이다.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농촌이고, 도시에서 회사생활에 적응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농촌이라는 것이냐”며 당시 불쾌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왜 이러한 시선이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농민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냈다.  

“농민들이 너무 바쁘다 보니까, 농산물 키워서 가락시장에 내다 파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너무 고되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이 땅을 돌보고 어떤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이 사과 한 개를 위해 하늘을 생각하고 땅을 생각하고 물을 생각한다는 것을 제대로 이야기 해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농부들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결심했다.” 

이지현 뭐하농대표는 8일 열린  ‘청년마을 성과공유회’에서 자신의 귀농 정착 경험과 청년마을 공동체 사업을 소개하며 농업과 지역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되새겼다. / 공주=이미정 기자
이지현 뭐하농대표는 8일 열린  ‘청년마을 성과공유회’에서 자신의 귀농 정착 경험과 청년마을 공동체 사업을 소개하며 농업과 지역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되새겼다. / 공주=이미정 기자

이 대표는 뜻이 맞은 귀농·귀촌 청년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꾸리고 농업의 가치와 영역을 확장하는 도전에 나섰다. 농촌의 삶과 문화가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농업을 기반으로 한 문화사업을 하는 회사인 ‘뭐하농’도 설립했다. 

아울러 2020년엔 커뮤니티 및 거점 공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복합문화공간 카페인 ‘뭐하농하우스’도 오픈했다. 이 대표는 “우리가 농부가 되기 전에 각자 갖고 있던 능력들이 있으니, 이를 활용해서 농부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해보자”라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뭐하농 구성원들은 조경설계사와 국책기관 연구원, 바리스타, 조리전공자 등 출신 이력이 다양했다. 뭐하농하우스는 지역의 핫플레이스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2021년 청년마을 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뭐하농’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괴산에서 두 달 살아보기’ 프로그램 운영도 운영했다. 프로그램은 △비즈니스 스쿨 △파밍△네트워킹 △투어링 △셀링(지역 대표축제 참여, 플리마켓 등) △문화공연 등 다양했다. 이 대표는 “1기와 2기를 합쳐 총 23명이 ‘두달살기’에 참여했는데 이들 중 18명이 다양한 형태로 지역에 정착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농촌이란 그저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 자기의 삶과 가치, 목적을 공유하면서 주체적이고 다양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도시의 삶처럼 억지로 워라밸을 맞춰가야 하는 삶이 아니라 워크와 라이프가 조화롭게 돌아가면서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2019년 충남 공주에 정착한 서동민 가가책방 대표는 지역에서도 충분히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충남 공주에 내려와 정착한 후 동네 책방을 열고 마을 공동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서 대표는 “예전부터 우리 사회엔 ‘지역에 있으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런데 ‘지역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서울이 인프라가 좋다고 하지만 교통지옥과 높은 주거비, 물가를 감당해야 한다. 지역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지역의 가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논의의 장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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