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감독이 신작 ‘드림’으로 돌아왔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병헌 감독이 신작 ‘드림’으로 돌아왔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드림’은 개념 없는 전직 축구선수 홍대(박서준 분)와 열정 없는 PD 소민(이지은 분)이 집 없는 오합지졸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 ‘극한직업’(2019)으로 1,600만 관객을 사로잡은 이병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2010년 제8회 홈리스 월드컵에 첫 출사표를 던진 대한민국 대표팀의 실화를 모티프로,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더해 새롭게 창작했다. 

이병헌 감독은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홈리스 월드컵을 알게 된 후,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상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저마다의 이유로 남들과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사연이 마음을 흔들었고, 첫 출전한 월드컵에서 성적은 꼴찌였지만 가장 큰 응원을 이끌어냈던 대한민국 대표팀의 투지와 열정에 재미와 감동을 느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알리고 나누고 싶었다는 이병헌 감독은 홈리스 월드컵의 한국 공식 주관사인 빅이슈코리아를 통해 홈리스들을 취재하고 201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홈리스 월드컵에 동행해 한국팀의 전 일정을 함께 소화하는 등 오랜 준비 시간을 가졌다. 기획부터 사전 조사와 각본 작업을 거쳐 촬영을 끝내고 개봉하기까지, 약 10년이라는 시간을 ‘드림’과 함께 하며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오는 26일 개봉을 앞두고 지난 24일 <시사위크>와 만난 이병헌 감독은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관객들에게 ‘드림’을 소개하게 된 것에 대해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던 내 생각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고 전하며 “분명히 재밌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병헌 감독이 각별한 애정을 쏟아 완성한 ‘드림’.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병헌 감독이 각별한 애정을 쏟아 완성한 ‘드림’.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초고와 달라진 부분도 있나.  

“홈리스가 축구하는 이야기, 딱 들어도 재미없어 보이지 않나. 그 편견을 깨는 데 시간이 걸렸다. 충분히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투자나 캐스팅 등 설득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잘 안됐다. 받아주는 쪽에서 안 받아주니 그만큼 시간이 걸린 거다. 실화 소재인데다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코미디 허용 범위에 대해 혼자 판단할 수 없었다. 일단 길게 써놓고 스태프들과 화의하면서 걷어내는 작업을 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은 걷어냈다. 초고에는 코미디가 더 많았다.” 

-이 소재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꼭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교양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것을 봤다. 영화에 담긴 경기 내용이 실제 2010년 월드컵 경기 내용과 똑같다. 소개된 경기 내용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그들의 사연도 재밌게 봤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도 들더라. 아예 몰랐거든. 전혀 모르는 세계였다. 그게 미안하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재미도 느끼고 감동도 느꼈다면, 그것을 소개해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마음에 선택했다.”

-쉽지 않은 상황임에도 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아서. 앞서 말한 이 이야기를 영화로 꼭 하고 싶었던 이유,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극한직업’도 나왔는데 또 이런 부침을 겪어야 하나, 이 정도면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닌가, 틀린 게 아닌가 다시 생각해 보자 한 적도 있는데 이미 포기할 수 없는 선을 넘어버렸더라. 이 영화를 내놓고 어떤 소리를 듣든, 손해가 있더라도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걸 고집이나 아집으로 표현하면 안 될 것 같다. 분명히 재밌을 것이고 평가받을 시기가 남았으니까, 그 이후에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미디적 요소보다 홈리스의 사연에 중점을 맞춘 ‘드림’.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코미디적 요소보다 홈리스의 사연에 중점을 맞춘 ‘드림’.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최근 SNS에 ‘극한직업’과 비교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오전에 강아지 산책시키고 기분이 굉장히 좋은 상태였다. 숙취도 없고 땀도 조금 난 상태에서 물 한잔 마시고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그리고 ‘드림’이 호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서 좋았다. 그런데 뒤따라오는 말들이 ‘극한직업’과의 비교라, 같이 일한 사람들이 다르고 배우들이 다르고 영화는 공동 작업이라고 생각하는데 나 한 명 때문에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것 같아 그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있었다. 가볍게 쓴 글이 무겁게 유통된 것은 아마 내가 평소 가진 우울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감독 특유의 개성이나 코미디 요소가 약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후반 이야기가 정해져 있었다. 브라질에서 겪었던 대회 과정, 그 내용을 똑같이 영화로 옮기고 싶었다. 그 실화에 나의 기교로 뭔가 만들어서 끼워 넣는, 너무 껴든 느낌이 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병헌의 작품이라는 게 들키지 않길 바라기도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쓸 때 그건 어렵더라고. 어쩔 수 없이 드러내면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신 전형성을 갖고 가면서도 무서워하지 말고 재밌게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익숙함이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온 가족을 놓고 봤을 때는 편안한 느낌을 주는 영화이길 바랐기 때문에 익숙한 것을 재밌게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홈리스 팀원들의 사연은 어떻게 구상했나. 

“취재를 통해 많은 사연을 수집했다. 가장 흔한 사연들을 가져왔다.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의 사연이 다양하다기보다는 비슷하다는 거였다. IMF, 빚보증, 건설 현장 사고, 가족과의 불화, 가정환경 등 비슷한 사연이 굉장히 많았다. 동시에 개별성도 중요했다. 캐릭터성을 주되 특징을 다르게 만들고자 했다. 어느 한 쪽이 도드라지지 않게 비중이나 페이지 계산을 해서 시나리오를 쓸 정도로 조심스럽게 작업했다. 또 그 사연으로 인해 그들이 피해자로 보이는 것은 원하지 않았고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극 중 홍대를 연기한 박서준(왼쪽에서 두 번째).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극 중 홍대를 연기한 박서준(왼쪽에서 두 번째).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홍대는 완전히 창작된 캐릭터였다. 어떤 인물로 그리고 싶었나.  

“홈리스 팀원들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선택한 건데 대중영화로서 재미도 필요했다. 그런 장치들이 필요했고 조연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주연을 만든다면 어떤 캐릭터가 돼야 할까 생각했을 때, 홈리스는 경기장 밖에서 내몰린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홍대는 그 울타리 안에 있지만 조금 밀려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밖에 있는 사람과 가장 거리가 가까운 안쪽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 그들이 만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편하고 재밌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또 홍대에게도 사연을 만들어서 스트레스를 주려고 했다.” 

-소민을 연기한 아이유의 비중이나 활약이 미미해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왜 아이유여야했나. 

“톱스타가 그 정도밖에 안 한다는 것, 미미하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배우가 이야기의 의미에 동의해 줘서 출연한 것이잖나. 스타에 맞게 비중을 높이자고 했으면 (제작 단계에서) 부침도 겪지 않았겠지.(웃음) 원래 소민은 홍대보다 나이가 많은 설정이었다. 캐스팅 회의를 하러 갔는데, 리스트 업을 하는데 스태프 중 한 명이 아이유를 최상단에 놨더라. 아이유를 왜 이렇게 올려놨냐고 했더니 정말 진심 어린 마음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팬심에 사진이라도 올려보고 싶다고 하더라. 바로 수긍이 됐다. 나도 팬이니까. 그래서 미친 척하고 넣어봐라, 캐스팅되면 시나리오를 수정하겠다고 했는데 (아이유가) 하겠다는 거다. 깜짝 놀랐고 이 이야기의 의미를 알아준 것도 고마웠다. 타이밍도 좋았던 것 같다. 배우로서 영화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텐데 멀티캐스팅이라 부담감을 덜고 작업할 기회가 아닐까 싶어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아이유가 오면서 정말 좋았다. 영화 사이즈가 굉장히 커진 느낌도 받았다.”

-박서준, 아이유와의 작업은 어땠나. 

“준비를 잘해왔다. 평소에 내가 누구에게 먼저 말도 못 걸고 배우들도 못 챙기고 모난 구석이 있는데 일 이야기는 해야 하고 디렉션은 해야 하잖나. 그런데 그들이 알아서 잘해서 디렉션이 많지 않더라. 내가 생각한 속도감과 맞지 않을 때 그것을 수정하는 정도 외에는 다른 디렉션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내 노동력을 줄여준 것 같다. 고민을 많이 하고 준비해서 오지만 현장에서는 되게 술렁술렁 잘 하더라. 똑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병헌 감독이 아이유 캐스팅 비하인드를 전했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병헌 감독이 아이유 캐스팅 비하인드를 전했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박서준과 아이유가 빠른 속도감의 대사를 소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더라. 이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사람들이 왜 작품 속 말투가 다 똑같냐고 하더라. 글쎄, 나는 나름의 장치라고 생각하고 활용하고 있다. 나도 그런 영화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 미사일도 날리고 쓰나미도 부르고, 그런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이야기가 옆에 있는, 보통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라서 나만의 무기가 필요하다. 대중적인 어필을 하기 위해 캐릭터성이나 대사를 활용한다. 어떻게 대사를 하면 재밌을까라고 했을 때 다양하게 배치하는 것보다, 나의 스타일과 톤, 속도감을 유지하면서 하는 것도 하나의 장치가 아닐까 생각했다. 필요에 의해서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부부인 정승길과 이지현이 범수와 진주로 분해 로맨스 연기를 펼쳤다. 캐스팅 비하인드가 궁금한데.  

“되게 실례되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부부가 같은 공간에서 작업한다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배우 입장에서 그런 제안을 받으면 거절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많아질 거다. 정승길 선배와 이지현 배우의 연극 공연을 같이 보러 갔다. 공연을 보고 같이 치킨과 맥주를 마시고 헤어졌다. 두 분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손을 잡고 가는 거다. 저렇게 오래된 부부가 어떻게 손을 잡고 갈 수 있지? 쇼크였다. 대학로 거리에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부부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그래서 실례되는 제안인 것을 알지만 내 욕심에 부탁을 했다. 나도 닮고 싶어서. 살짝 고민하시더니 빠른 시일 안에 허락해 줬다.”

-‘스물’에서 함께 한 강하늘도 특별출연으로 힘을 보탰다. 

“한창 캐스팅 중일 때 그냥 연락을 주고받다가 (‘청년경찰’에서 호흡을 맞춘) 박서준과 나란히 달리는 모습을 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돌발적으로 ‘특별출연 해볼래?’라고 했더니, 좋은데 축구를 못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축구 못해도 된다, 조금만 뛰면 된다고 해서 현장에 왔는데 축구 연습을 하고 있더라. ‘축구 안 한다고 하지 않았냐’고 하길래 감독 말을 믿으면 어떡하냐고 했다. 하루 종일 엄청 뛰고 축구하고 다음날 근육통이 왔다고 하더라. 너무 고마웠다.”

이병헌 감독이 연출 철학을 밝혔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병헌 감독이 연출 철학을 밝혔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나리오를 쓸 때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나.  

“어떤 영화가 됐으면 좋겠냐고 물어본다면 필요한 영화, 의미 있는 이야기라는 거다. 재미 이전에 그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확신이 있어야 작업할 수 있는 것 같다. 혼자 멍 때리는 시간을 귀하게 생각하는데 문득문득 나도 모르게 떠오르고 잡히는 것들이 있다. 열어두고 제작사에게 아이템도 많이 받는 편이다. 또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저 장면에서 어떻게 할까 하면서 발전되는 경우도 있다.”

-감독의 작품에서 ‘코미디’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감독에게 코미디는 어떤 의미인가.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하루 종일 웃기는 생각하는 게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장르, 특히 호러도 써봤는데 너무 힘들었다. 하루 종일 사람 죽이는 거나 생각하고 있고 그런 이미지들을 계속 떠올리고 있는 거다. 보통 밤에 작업을 하는데 자꾸 책상에서 뒤돌아보고 샴푸하는데 눈을 못 감았다. 이렇게 어떻게 살지 생각이 들더라. 그러다 코미디를 썼는데, 하루 종일 재밌는 말들을 떠올리고 쓰고 있더라. 안 그래도 우울감이 있는 애가 재밌는 생각이라도 많이 하고 있자는 생각도 들었다.

또 만들어놓고 봤을 때 극장에서 즉각적인 반응에서 오는 쾌감도 있다. 실패했을 때 더 아프긴 하지만, 리스크가 있는 만큼 쾌감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코미디 장르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사실 박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코미디 영화의 의도는 한 번이라도 웃으면 되는 거라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다거나 아트적인 것도 중요한데 그것은 그런 것을 잘 하는 분들이 하면 되는 것이고 나는 웃기만 해도 의미는 챙겨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코미디 장르를 좋아한다.”

-‘드림’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감독의 ‘드림(꿈)’이 있다면.  

“사실 내가 장르물에 지친 것도 있다. 편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와 아빠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가도 문제가 되지 않는 편안한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요즘 시기라면 그런 편안함이 오히려 또 새롭지 않을까 싶다. 나의 ‘드림’은 당장 눈앞에 있는 ‘드림’이다. 관객 수도 당연히 중요하지. 영화산업을 위해서라도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일단 그보다 먼저 영화를 본 사람들이 필요한 이야기였다고만 느껴주면 감사하겠다. 그런 바람이 꿈처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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