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임대차계약이 종료된 후 임차인이 건물을 원상복구하지 않고 떠나는 경우, 임대인은 과연 보증금에서 복구비용을 마음대로 공제할 수 있을까?

이는 부동산 임대차 관계에서 자주 발생하는 핵심 쟁점이다. 임대차보증금은 임대차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채무를 담보한다는 점은 일반적인 사실이지만, 실제로 임대인이 복구비용을 자동으로 공제할 수 있으려면 몇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대법원 2002다52657 판결은 이러한 상황에서 임대인이 복구비용을 쉽사리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명확히 보여주는 대표적 판례다.

이 사건의 배경을 살펴보면, 임차인이 보증금 중 일부를 제3자인 채권양수인에게 양도했고, 이에 대해 임대인은 별다른 이의를 하지 않은 채 승인했다. 문제는 임대차계약이 종료된 이후였다. 건물을 원상복구하지 않고 떠난 임차인에 대해, 임대인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성된 임대차계약의 약정을 근거로 복구비용 1억 원을 공제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임대인이 건물을 복구 없이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재임대한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에서 중요한 법률 조항이 민법 제451조 제1항이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임대인이 채권양도를 승인할 때 별도의 이의를 명시적으로 유보하지 않았다면, 훗날 채권양수인에 대해 ‘공제(상계)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즉, 임차인이 양도한 채권(보증금 반환청구권)을 채권양수인이 넘겨받은 이상, 임대인은 사후적으로 “원상복구비를 빼겠다”고 함부로 공제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임대차보증금이 여러 채무를 담보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임대인에게 ‘복구비용 공제권’이 생기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대법원은 “임대차 종료 후 임대인이 실제로 복구할 의사와 그에 따른 실행이 있어야 복구비용을 공제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이는 임대차계약서에 원상복구 의무가 명시되어 있다고 해서 임대인이 무조건 그 비용을 보증금에서 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임대인이 복구 공사에 진짜로 착수하거나 적어도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사건의 임대인은 임차인이 나간 뒤에도 건물을 복구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제3자에게 재임대했으므로, 복구비를 청구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대법원은 공제 주장에 관한 임대인의 상고를 기각했다. 판결문에서 법원은 “채권양도 과정에서 임대인이 공제를 주장할 근거를 확실히 해두지 않았고, 실제 복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주요 사유로 들었다. 임대인이 임차인과 복구 비용에 대한 약정을 체결해두었다고 하더라도, 막상 임차인이 떠난 후 그 복구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다면, 공제 근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판결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임대차보증금이란 임대차 계약이행에 관한 담보이기는 하지만, 원상복구비를 ‘법률상 자동’으로 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계약서에 복구 의무 관련 조항이 있다 해도, 임대인은 복구비를 실제로 사용할 의사가 있고, 복구 공사를 실행하거나 실행하려는 준비가 이뤄져 있어야 비로소 공제의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보증금 일부가 채권양수인에게 양도된 상황에서 임대인은 반드시 이의를 제기하거나 공제 가능성을 유보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를 간과하면 나중에 공제 의사를 밝혀도 법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임대인은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할 때 원상복구 조항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향후 실제 복구가 필요할 가능성이 있다면 이를 위한 예산 책정과 실행 계획까지 마련해두어야 한다. 나아가 보증금 반환청구권이 제3자에게 이전될 수도 있음을 고려해, 채권양도 단계에서부터 ‘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를 확실히 확보해 두어야 한다. 이를 소홀히 했다가 이번 사건처럼 임대차 종료 후에 복구비용을 청구하려 하면, 실제로 복구 공사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이유로 법원에서 공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대법원의 판단은 임대인이 복구비용 공제를 주장하려면 필요한 법적·실무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임대차계약 전부터 주의 깊게 복구 의무의 범위를 설정하고, 향후 복구비용을 공제하고자 한다면 적시에 명시적으로 이의를 해두어야 하며, 그 비용을 실제로 지출하거나 지출 계획이 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임차인 역시 계약 종료 시 원상복구 의무를 정확히 숙지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의 위험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측 모두가 분쟁에 휘말려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게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판결은 임대차 종료 시점에 발생하는 복구비용 분쟁에서 임대인이 지켜야 할 원칙과 요건을 분명하게 확립했다. 임대차계약서 작성 시 원상복구 조항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채권 양도·승낙 절차에서도 공제 가능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확실히 해두는 것이 필수적이다. 임대차보증금이 여러 채무를 담보한다는 사실만 믿고 안심해서는 안 되며, 복구 비용을 실제로 지출하지 않거나 그럴 계획이 전혀 없다면, 보증금에서 임의로 공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이번 판결을 통해 분명히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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