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북한학 박사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북한학 박사

북한은 여전히 ‘은둔의 나라’에 머물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아버지이자 선대(先代) 수령이라 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6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통령께서 은둔에서 나를 해방시켰다”고 말했지만,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적지 않다. 정보의 개방은 곧 세습 독재체제의 종말이기 때문이다.

언론 불모지인 평양에는 몇몇 관영 선전매체들이 가동되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가 양대 축을 이룬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동정이나 찬양·선동 기사만 넘쳐날 뿐 제대로 된 뉴스나 정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북 정보 당국이나 김정은 체제의 내부를 취재하는 미디어들은 늘 북한 매체의 행간을 읽는데 집중한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과 핵심 지배세력, 그리고 주변의 인물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는 북한이 어떤 인물의 등장이나 퇴장, 몰락에 대해 배경 설명을 하지 않거나 아예 함구하는 사정에서 비롯된다. 마치 냉전시기 구 소련 공산당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위해 서방 학자나 정보기관이 썼던 ‘크레미놀러지(Kreminology)’란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혁명기관지 이스베스티야에 실린 사진에서 공산당 서기장을 중심으로 한 인물배치나 서열 변동으로 크렘린궁의 내부 권력 구도를 읽어내려 했던 시도다.

지난해 12월 31일 밤 평양 대동강 가운데 자리한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새해맞이 축하행사에 등장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대북 정보 당국자와 전문가 그룹에 또 하나의 숙제를 던졌다.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이자 권력 실세로 꼽히는 그가 행사장에 아들·딸로 추정되는 아이 둘의 손을 잡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자정을 넘어 진행된 이 행사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정치국 위원을 비롯한 당정 간부 및 군부 고위층이 대거 참석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딸 주애와 함께 나왔고, 박태성 내각 총리와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조용원 당 비서, 박정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이 부인과 함께 행사장에 나타나 식전 환담을 하는 장면이 북한TV에 비쳐졌다.

물론 북한은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특히 김여정 부부장의 등장은 5.1경기장 밖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행사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짤막하게 보여주는데 그쳤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 부녀와 고위 간부의 부부동반 장면 사이에 김여정 부부장이 어린 남녀 아이의 손을 잡고 나왔다는 점에서 자녀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판단을 우리 국가정보원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이 이 시점에 김여정 부부장의 자녀를 공개한 건 아마도 ‘정상국가’ 이미지를 내비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결혼 여부조차 알려지지 않고 이런저런 여성편력 소문만 난무했던 김정일 시기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이는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집권한 김정은 위원장이 이듬해 부인 이설주를 동반해 음악회에 등장하고, 평양의 놀이시설인 문수물놀이장을 부부가 함께 돌아보며 ‘부인 이설주 동지’를 공식화했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또 지난 2022년 11월 화성 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장에 딸 주애를 처음 등장시킨 것과도 맞물려 있다.

더 이상 베일에 싸인 기괴한 평양 로열패밀리가 아니라 여느 집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을 ‘딸 바보’ 이미지로 부각하는 앵글의 사진이 선전매체에 무더기로 실리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생모 고용희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연민이나 안타까운 감정이 실려 있는 것이란 해석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과 28년간 함께 살면서 둘 사이의 아들을 후계자 반열에 올리고 마침내 최고권력자가 됐지만 고용희는 끝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은둔을 강요받던 고용희는 김정은 위원장이 20살이던 2004년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에서 유선암으로 쓸쓸하게 숨졌다. 남편도 곁에 없었다. 고용희의 유해는 평양으로 은밀하게 운구돼 외곽 대성산 기슭에 묻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이 안타까웠을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이후 생모를 ‘평양의 어머니’로 우상화하려 했지만 녹록치 않았다. 고위 간부들을 대상으로 기록영화까지 만들어 보게 했지만 이런저런 문제점이 드러난 때문인지 시간이 상당히 흘렀는데도 고용희 우상화 움직임은 없다.

사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북한 정권을 수립한 김일성 주석과 그 일족을 이른바 백두혈통 운운하며 우상화 하는 건 너무 빈약해 보인다. 일제 강점기 항일 유격대 활동을 했다고 떠들썩하게 선전하지만 김일성 주석이 종착지로 택한 건 소련군 88여단의 대위였다.

해방된 조국 북반부에 소련군 정치장교를 등에 업고 나타난 김일성 주석은 민족분단의 씨앗을 뿌렸고 동족상잔의 6.25 남침도발을 감행한 장본인이다. 소련 극동 브야츠크병영에서 1941년 낳은 아들 김정일 위원장을 ‘1942년 백두산 출생’으로 거짓 선전하고 있으니 백두혈통의 신화는 그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판이다.

더욱이 김정은 위원장의 생모 고용희가 일본 오사카 출생으로 북한 주민들이 ‘째포’라는 속칭으로 차별하는 재일교포 출신이란 점은 우상화에 아킬레스건일 수 있다. 고용희의 아버지 고경택은 일제 강점기 제주에서 건너간 인물로 파악되고 있으니 북한 엘리트와 주민들 사이에 ‘백두혈통인줄 알았는데 후지산과 한라산 줄기’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게다가 고경택이 한때 히로타군복공장에서 간부로 일하며 일본군의 옷을 만드는 일에 관여했다고 하니 주민들 입장에서는 ‘수령님이 항일 유격대 활동을 했다는데, 그럼 김정은 위원장의 외할아버지는 김일성 토벌 일본군의 군복을 만들었다는 얘기냐’라며 놀라워할 수 있겠구나 싶다.

외부정보 차단과 사실 은폐, 허위 선전과 날조는 김정은 체제의 취약성을 점점 더 드러내고 있다. 더 이상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폐쇄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아진 것이다. 무엇보다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청년세대의 한류 드라마·영화 탐닉은 이미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한 러시아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1만 명이 넘는 북한군을 파병하고도 그 사실을 철저히 감추는 김정은 위원장은 아직도 폐쇄체제의 고수가 가능하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에 총알받이로 나선 북한 병사들의 희생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명분 없는 전쟁에 내몰려 낯선 이국땅의 설원에서 숨져간 청년군인들과 부모의 한이 체제 이반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자신을 ‘최고존엄’ 운운하며 절대시해온 김정은 위원장이 2,500만 주민 모두가 존엄하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면 불행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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