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이 국가에서 유일하게 인정을 받으며 할 수 있는 직업인 안마사 업계에서도 고령화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시각장애인이 국가에서 유일하게 인정을 받으며 할 수 있는 직업인 안마사 업계에서도 고령화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국내 인구의 고령화 문제는 단순 노인의 증가를 넘어, 장애를 가진 이들의 고령화 이슈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시각장애인이 국가의 인정을 받으며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직업인 안마사 업계에서는 고령화 문제를 현실로 느끼고 있다.

◇ 체력적 한계 느끼는 노년기 안마사들

'2023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국내 시각 장애인은 24만8,360명으로, 이 가운데 60세 이상 노인의 비중은 67.8%에 달한다. / 그래픽= 이주희 기자
'2023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국내 시각 장애인은 24만8,360명으로, 이 가운데 60세 이상 노인의 비중은 67.8%에 달한다. / 그래픽= 이주희 기자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23년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국내 시각 장애인은 24만8,360명이다. 이 가운데 △60~69세 5만9,129명 △70~79세 5만8,175명 △80세 이상 5만1,111명으로, 전체 시각 장애인의 67.8%가 노년기 시각장애인이다.

시각장애의 경우, 선천적인 요인보다 질환‧사고 등으로 인한 후천적 요인으로 생기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지난해 공개한 ‘2024 장애인 통계’에 따르면, 후천적으로 장애가 발생한 비율은 92.6%에 달한다. 이는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불의의 사고로 인해 혹은 나이를 먹어서 생기는 질병으로 인해 비장애인도 언젠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서울 강북구에서 안마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덕화(58) 씨도 30대 중반 예상치 못하게 녹내장 판정을 받으며 시각장애인이 됐다. 박씨는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17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시력을 잃고 말았다”며 “시력을 잃고 죽고 싶었지만 자식이 있어 살았다. 맨 처음 점자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아무 곳에서도 안 가르쳐 줬다”며 막막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수소문 끝에 수유리에 맹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곳에서 안마를 배우게 됐다”며 “시각장애인이 정당하게 나라에서 인정을 받고 할 수 있는 건 안마 밖에 없다. 내 나이 37세에 눈을 멀어 그때부터 안마를 했다”고 덧붙였다.

개인 안마원을 운영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박덕화(58) 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안마원을 취재진에게 소개하고 있는 모습. / 사진=이민지 기자
개인 안마원을 운영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박덕화(58) 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안마원을 취재진에게 소개하고 있는 모습. / 사진=이민지 기자

안마사는 의료법 제82조에 의거해 시각장애인만이 할 수 있는 유보직종이다. 고등학교에 준하는 교육을 하는 특수학교에서 물리적 시술에 관한 교육과정을 받거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안마수련기관에서 2년 이상의 안마수련 과정을 마친 사람만이 안마사로서 활동이 가능하다.

안마는 상당한 육체적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일이다. 노년기에 최소 1시간씩 타인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다 보면 체력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세 명의 60대 안마사와 함께 일을 하고 있는 박덕화 씨는 “하루에 5~6명의 사람을 안마해주는데, 안마사들이 숨이 차고 체력적으로 벅차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며 “그럼에도 이거 아니면 먹고 살 길이 없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힘들어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마원을 운영하는 사람들 가운데 젊은 편에 속하는 편”이라며 “거의 70대분들이 많이 하신다.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안마를 못해 안마사를 고용해서 운영하는 경우도 많은데, 돈 벌어서 남 다 주는 격”이라고 덧붙였다.

◇ 성실한 고령 안마사를 더 힘들게 하는 한국 복지

14일 기준 대한안마사협회에 가입된 전국 회원 수는 9,887명으로, 이 가운데 65세 이상 안마사는 3,268명이다. 대한안마사협회 윤대현 사무총장은 시사위크와의 만남에서 “고령층이 많이 (협회에) 입소하는 추세”라며 “요즘 거의 대부분 중도 실명자다. 고령이다 보니 눈이 안 보이는 것 말고도 여러 기저 질환이 있는 경우가 많다. 당뇨나 사고 후유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생계를 위해서 그럼에도 일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령 시각장애인들은 대부분 혼자 안마원을 운영한다”며 “안마원을 개설할 수 없는 형편의 사람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파견 안마사로 근무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내 사회복지 시스템은 성실히 노동을 통해 수입을 얻고자 하는 안마사들의 근로 욕구를 낮추는 모양새다. 장애인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는 파견 안마사는 경로당에서 안마서비스를 제공하며, 1년마다 갱신하는 계약직 형태로 진행된다. 이들의 급여 수준은 월 130만원 수준이다. 

대한안마사협회 윤대현 사무총장은 시각장애인의 노동현장을 반영하지 않은 불합리한 제도들이 고령 안마사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 사진= 이민지 기자
대한안마사협회 윤대현 사무총장은 시각장애인의 노동현장을 반영하지 않은 불합리한 제도들이 고령 안마사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 사진= 이민지 기자

윤대현 사무총장은 “경로당 파견 안마사로 나가서 일하나 기초생활수급자로 사나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기초생활수급자가 더 나은 현실”이라며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저렴하게 집도 구할 수 있고 수급비용도 준다. 그러면 파견 안마사 월급과 대동소이하다. 이에 안마사로 일하다가 노년기에는 그냥 기초생활수급자로 들어가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노동 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불합리한 제도들은 고령 안마사를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와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운영하는 ‘근로지원인 지원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인해 혼자 ‘일상생활이 불가’한 중증장애인의 활동을 돕는 서비스다. 반면 근로지원인 지원사업은 핵심적인 업무 수행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장애로 인해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중증장애인이 근로지원인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실제 지난해 고(故) 장성일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안마원에서 활동지원사의 도움 받았다는 이유로 시청으로부터 지난 5년 간 받은 활동지원급여 약 2억원을 반환하라는 통보를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바 있다.

근로지원인은 ‘고용이 된’ 시각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다. 즉, 시각장애인이 개인 안마원을 운영할 경우 근로지원인 제도를 이용할 수 없고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만 받을 수 있기에 이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생긴 것이다.

윤대현 사무총장은 “장애인이 편하게 사회생활을 하라고 만든 제도인데, 장애 유형을 이해 안 해주는 것 같다”며 “혼자 업장을 운영하는 안마사의 경우, 손님 안마를 해드리고 있는 사이에 카운터에 전화가 오면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받으려고 해도 비장애인처럼 빨리 받을 수 없다. 그렇게 손님을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또 “업장 내에서 안마사가 고열이 나고 많이 아파서 근로지원인에게 약국에서 해열제를 사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었다. 부득이 한 부탁으로 부정수급 판정을 받고 벌금 6,000만원을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업장 밖에서 근로지원인이 일을 봤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정부가 이러한 사회복지 제도를 운영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장애인의 자립과 일자리 안정에 있다.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제도가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저출산·초고령 사회에 노인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시각 장애인의 수도 함께 증가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리 모두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비 시각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령의 안마사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관심으로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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