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시각장애인 취업역량강화센터에서 시각장애인 당사자 최인호(26) 씨가 센스리더를 통해 문자를 음성으로 인식하며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 사진=이민지 기자
종로구 시각장애인 취업역량강화센터에서 시각장애인 당사자 최인호(26) 씨가 센스리더를 통해 문자를 음성으로 인식하며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 사진=이민지 기자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건국대학교를 졸업한 저처럼 좋은 대학을 나온 시각장애인이 생각보다 많아요. 학력은 충분하지만 시각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취업 준비 환경 때문에 집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요.”

올해 1월, 최인호(26) 씨는 종로구 장애인일자리 사업을 통해 취업에 성공, 시각장애인 취업역량강화센터로 파견을 나서며 자립의 첫발을 내디뎠다. 현재 시각장애인의 구직활동을 지원하는 그는 시각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보이지 않는 자’의 어려움을 잘 아는 만큼, 최인호 씨는 오늘도 자신이 경험했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장애인 고용에 대한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최인호 씨처럼 시각장애인이 취업하기란 여전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비장애인에게도 험난한 취업 과정이 시각장애인에게는 훨씬 높은 벽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직군에서 일할 수 있는지, 어떤 자격이 필요한 지 등 기본적인 취업 정보조차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은 대체로 온라인상의 정보를 ‘센스리더’를 통해 얻는다. 센스리더는 모니터에 표시된 글자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화면낭독 프로그램이다. 이미지 형태로 구성된 콘텐츠는 단순히 ‘그림’으로 인식돼 음성으로 읽히지 않는다. 문제는 상당수 기업의 채용공고가 이미지 형식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시각장애인들은 구직 과정의 출발점인 ‘정보 접근’부터 가로막히고 있다.

정보 접근의 한계는 진로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시각장애인의 취업은 △공무원 △교사 △사회복지사 △안마사 등 시각장애인 채용 사례가 있는 몇몇 직군에 집중돼 있다. 새로운 직업이 빠르게 생겨나고 사라지는 시대지만, 시각장애인의 선택지는 좁은 상태로 큰 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장애인 정책 핵심 기관조차 ‘접근성’ 취약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업무 환경은 시각장애인이 스스로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동시에, 근무 유지를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장애인 정책의 핵심 기관인 한국장애인고용공단조차 예외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이 공개한 ‘시각장애인 접근성 확보 관련 기관별 현황’에 따르면, △한국장애인개발원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한장애인체육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등 다수 기관에서 시각장애인의 내부 결재 시스템 접근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 그래픽=이민지 기자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이 공개한 ‘시각장애인 접근성 확보 관련 기관별 현황’에 따르면, △한국장애인개발원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한장애인체육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등 다수 기관에서 시각장애인의 내부 결재 시스템 접근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 그래픽=이민지 기자

최근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이 공개한 ‘시각장애인 접근성 확보 관련 기관별 현황’에 따르면, △한국장애인개발원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한장애인체육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등 다수 기관에서 시각장애인의 내부 결재 시스템 접근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장애인개발원의 경우, 이경혜 원장이 시각장애인임에도 내부 결재 시스템이 화면낭독기와 호환되지 않아 직접 결재를 진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이 원장은 민감한 정보가 포함된 결재 문서를 근로지원인이나 다른 직원의 도움을 받아 처리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이는 지난 2022년 국가기관 등에서 근무하는 장애인의 인트라넷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지능정보화기본법’이 발의됐으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적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각장애인의 취업은 단순히 일을 구하는 것을 넘어, 자립 지원의 차원에서 의미를 지닌다. / 게티이미지뱅크
시각장애인의 취업은 단순히 일을 구하는 것을 넘어, 자립 지원의 차원에서 의미를 지닌다. / 게티이미지뱅크

종로구 시각장애인 취업강화지원센터 배수연 팀장은 15일 시사위크와의 만남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만 있다면, 묵묵히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할 수 있는 인재들”이라며 “시각장애인과 함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비장애인에 비해 암기력이 좋음을 느낀다. 글을 들음으로써 정보를 접하기 때문에 문장을 쓰는 능력도 좋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희 센터는 단순히 취업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진짜 목표는 오랜 직업 유지를 통해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다”라며 “질 높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센터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제도적 개선과 공공기관‧기업의 협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후에너지환경고용노동 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이재명 정부 노동정책의 핵심”이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일학습병행 연계고용모델 등 국감 현장에서 제기된 제안들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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