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이 지난 2월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경제활력민생특위-소상공인연합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윤희숙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이 지난 2월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경제활력민생특위-소상공인연합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손지연 기자  국민의힘 내에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와 함께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의 좌절과 국민의 외면을 만들었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다. 국민의힘 내에서 당직을 맡은 인사가 계엄에 대해 ‘사죄한다’는 표현과 계엄 선포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25일 윤희숙 여의연구원장의 발언에 대해 당의 공식 입장인지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이며 “대체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대선 경선에 참여한 후보들도 윤 원장의 발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나섰다. 윤 전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위한 전초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 윤희숙 “윤석열에 줄서는 정치가 계엄 낳아”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이 전날(24일) KBS에서 주관한 당 정강‧정책 방송 연설에서 “권력에 줄 서는 정치가 결국 계엄과 같은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며 “국민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파면당한 윤 전 대통령이 한남동 관저에서 사저로 향할 때 ‘이기고 돌아왔다’는 발언을 언급하며 “무엇을 이겼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당에 남겨진 것은 깊은 좌절과 국민의 외면뿐”이라고 직격했다. 

윤 원장은 윤심(윤 전 대통령의 의중) 살피기에 골몰했던 친윤(친윤석열)계의 행동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저희 국민의힘의 행태 역시 국민께 머리를 들지 못할 정도였다”며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며 두 명의 당 대표를 강제로 끌어내렸고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후보를 눌러 앉히기 위해 수십 명의 국회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리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움직임을 추종했거나 말리지 못한 정치, 즉 권력에 줄 서는 정치가 결국 계엄과 같은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며 “국민의힘은 지금 깊이 뉘우치고 있다. 국민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계엄은 이 모든 것의 시작이 아니라 너무나 혐오스러우면서도 익숙한 우리 정치의 고름이 터진 결과”라며 “아무리 차분히 바라본다 해도 지난 3년은 다수당이 의석수로 정부를 무력화시킨 무정부상태였다”고 했다. 다수당의 권력으로 협치 없이 의석수로만 정치해 온 더불어민주당도 계엄의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강조한 셈이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 취임사에서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불안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여당의 비대위원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또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1월 10일 관훈클럽 창립기념식에서 “느닷없는 사건으로 국민께 큰 혼란과 충격을 드려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당 지도부에서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사태를 불러온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이나 당 차원의 성찰은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44일, 파면된 지 22일 만에 윤 원장이 윤 전 대통령의 ‘책임론’을 인정하며 사죄의 뜻을 밝힌 것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자리에 앉고 있다. /뉴시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자리에 앉고 있다. /뉴시스

◇ 경선후보들 “윤희숙에 깊은 공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윤 원장이 줄 서는 정치가 계엄을 낳았다는 데 당의 공식입장이냐’는 물음에 “공식입장이다, 아니다, 얘기하기 뭐하다”라며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다만 “당정 간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수직적 관계가 되는 바람에 오늘날의 사태에 도달한 것에 대해 저도 지도부 일원으로 건강한 당정관계를 구축하지 못해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당정 간 불통이 작금의 사태를 초래했고 이어서 민주당의 폭압적이고 위헌적인 입법권 남용이 오늘의 사태 초래했다고 지적했다”며 “윤 원장의 지적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잘못됐다”, “과도했다”고 밝힌 바 있지만,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일축하고 자당의 책임론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아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콘크리트 지지층보다 중도층의 표심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한 데도 탄핵 국면에서 헌재에 대한 정치적 공세에 집중하고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논리를 답습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대선 후보 경선이 진행되면서 이런 기조가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 구속 당시 서울 구치소를 방문하고 관저를 방문하는 등 강성 지지층에 편승해 온 나경원 경선 후보가 ‘4강’ 진출에 실패하고 탄핵에 찬성한 안철수 후보가 4강에 올랐다. 경선방식이 일반국민 여론조사 100%였지만 ‘역선택 방지조항’을 둬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에 한정된 경선을 치렀음에도 표심에서 ‘윤심’과 선 긋기가 나타난 것이다. 

또 경선에서도 후보 간 찬탄(탄핵 찬성)과 반탄(탄핵 반대)를 비롯한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 쟁점이 되며 대선 승리를 위해 윤 전 대통령과 선 긋기에 나서야 한다는 당내 인식이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대선 경선 주자들도 윤 원장의 연설에 동의한다는 뜻을 표하고 나섰다. 

윤 전 대통령 강성 지지층의 적극적인 지지를 통해 탄핵 국면에서 ‘보수진영 여론조사 1위’로 후보로 나선 김문수 후보도 이날 여의도에 위치한 캠프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원장의 연설에 대해 “우리 당이 변화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책임져야 한다. 우리가 발버둥 안치면 나라에 죄를 짓는 것이라는 간절한 목소리가 어제 윤 원장의 목소리였다”며 “바람직한 목소리”라고 평가했다.

또 안철수 후보도 전날 페이스북에서 “윤 원장이 밝힌 사과와 참회의 말씀에 깊이 공감한다”며 “모든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온전히 따르겠다”고 밝혔다.

윤 원장의 발언을 두고 윤 전 대통령과 본격적인 ‘선 긋기’에 나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국민의힘 A 의원은 이날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윤 원장의 연설 내용을 보면 당내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B 의원도 “당내에서 윤 전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의견들은 계속 있어 왔다”며 “윤 원장의 이야기를 당에서 공식화시켜 경선 토론에서 찬탄, 반탄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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