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손지연 기자 국민의힘이 대선 패배로 3년 만에 정권을 내주며 창당 이후 최악의 위기에 몰리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와 도덕성 논란 등을 정조준해 정권 재창출을 노렸으나 국민의힘이 자신했던 ‘골든 크로스’는 공허한 메아리로 끝났다. 탄핵 정국에서부터 대선까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끊어내지 못하고 ‘자충수’를 거듭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국민의힘, 상황 따라 윤석열 지지층 이용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로 발생한 정치적 혼란에 대해 ‘잘못됐다’, ‘과도했다’는 등의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계엄 선포에 대한 당의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꺼리면서 윤 전 대통령 강성 지지층이 ‘부정선거 음모론’, ‘계몽령’ 등의 논리로 무장해 결집하자 이를 지지율 상승의 발판으로 삼았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길어지자 당내 일각에서는 윤 전 대통령을 ‘윤석열 각하’로 불러 대통령 탄핵심판 ‘각하’를 유도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또 국민의힘 의원들은 ‘탄핵 반대’를 외치는 헌재 앞 릴레이 시위에 나서며 탄핵 기각‧각하 논리를 설파했다. 윤석열 정부 탄생에 기여해 친윤계 핵심으로 꼽히는 쌍권(권영세-권성동) 지도부는 이런 행동들을 ‘의원 개인의 행동’이라며 묵인했다.
이들은 ‘친윤계’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당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당권파’일 뿐이라고 호소했다. 당 지도부를 비롯해 중진 의원들은 윤 전 대통령이 수감됐던 서울 구치소를 방문해 ‘접견 정치’로 세를 규합했다. 이후 석방된 윤 전 대통령을 찾아 ‘관저 정치’에 협력하는 등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강성 지지층에 호소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특히 쌍권(권성동-권영세) 지도부는 강성 지지층의 ‘윤석열 지키기’ 요구에 응해 이들의 논리를 답습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탄핵 심판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자 권영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3월 13일 비대위 회의에서 “계엄 이후 민주당의 국정 마비가 드러났다”며 “탄핵 심판이 오히려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였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집회에 나선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를 그대로 국회로 들여온 것이다.
‘윤석열 각하’를 외치며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위하던 의원들은 '왜 비상계엄을 일으킬 수 있었는지'를 역설했다. 4월 4일 헌재의 대통령 파면 이후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성찰이 나오기도 했다.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은 지난 4월 24일 “윤석열에 줄서는 정치가 계엄을 낳았다”며 계엄 선포에 당의 책임이 있다며 사죄를 표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이런 호소에 ‘일부 동의한다’는 말로 갈음했다.
윤 전 대통령 지지층에 편승해 상황을 타개하려던 국민의힘이 대선 막바지에 돌연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하는 모습은 탄핵 인용 전의 발언들과 대비돼 ‘선거용’이라는 날 선 비판으로 돌아왔다. 쌍권 지도부의 ‘후보 강제 교체’ 사태 이후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김용태 비대위원장을 내정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의 당무 개입 금지’ 당헌 개정안을 의결하는 등 당정 관계의 복원을 외쳤지만 윤 전 대통령의 탈당을 권유하는 수준에 그쳤다.
자진 탈당한 윤 전 대통령은 부정선거론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공개 관람하고 자유통일당을 이끄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를 통해 ‘김문수 지지호소문’을 전달했다. 윤 전 대통령이 선거 개입에 나서자 김 비대위원장은 그제야 “국민의힘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일침했다. 하지만 강성 지지층이 ‘윤 전 대통령의 대안’이라며 세운 김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재판 잘 받으시고 건강하시라”라는 덕담 수준의 메시지만 반복했다.
이번 선거 유세 현장에서 <시사위크>와 만난 지지자들은 윤 전 대통령 비토에 나선 김 비대위원장을 맹렬히 비판하면서도 김 후보를 지지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김 비대위원장을 비난한 한 지지자는 “윤 전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김문수 후보도 없었다”며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 결속 깨진 채 출발한 ‘김문수 선대위’
내부 분열이 거듭되는 모습도 패배의 주요한 원인이 됐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한덕수와 단일화’를 강조하며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선출되자 당 지도부는 즉각 단일화에 착수했다. 하지만 협상은 좌절돼 쌍권 지도부는 김문수 후보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 ‘강제 후보 교체’를 시도했다. 후보자 등록일을 하루 앞둔 새벽에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내분을 불식시키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국민의힘 당원들은 ‘날치기’ 후보 교체 사태에 반대를 표하며 일단락됐지만 해당 논란으로 인해 선대위는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이미 진 선거’라는 패배의식만 남기게 됐다. 김 후보를 중심으로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했지만 내부에서는 결국 대선 이후 당권 투쟁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더불어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서 비롯된 친윤(친윤석열)-친한(친한동훈) 계파 갈등은 대선 국면에서 보수 지지층의 분열로 이어졌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김 후보에게 패배한 후 선대위 참여 조건으로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한 전 대표는 개별적인 선거 운동에 돌입했다. 친윤계에서는 이런 모습을 두고 김 후보가 돋보여야 할 대선 국면에서 한 전 대표가 당권을 위해 자기정치를 한다는 뒷말도 나왔다.
선거 막판 개혁신당 측에서 ‘친윤계에서 한동훈 전 대표가 당권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해 이준석 후보에게 당권을 넘기겠다며 단일화를 제안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곪아있던 내분이 다시한번 터졌다. 사실상 선거 끝까지 내분에 내분을 거듭한 셈이다.
국민의힘은 4일 오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선대위 해단식을 열고 그간 내분을 반성하며 ‘당내 결속’을 강조하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본격적인 당권 경쟁에 돌입할 경우, 고질적인 계파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한 전 대표가 벌써 윤 전 대통령을 옹호한 친윤계에 ‘대선 패배 책임론’을 앞세워 공세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국민들께서 ‘불법계엄’과 ‘불법 계엄 세력을 옹호한 구태정치’에 대해 단호한 퇴장 명령을 내리신 것”이라며 “기득권 정치인들을 위한 지긋지긋한 구태정치를 완전히 허물로 국민이 먼저인 정치를 바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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