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써밋에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써밋에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 뉴시스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이틀 앞두고 한국 외교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31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한국이 의장국으로 주도하는 국제무대이자 이재명 외교의 전략과 현실이 동시에 검증받는 무대로 평가된다.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이어지는 다자외교 일정 속에서 한국은 전통적 동맹의 틀과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 한국 외교 리더십… 세계에 선보일 기회

경주 APEC은 한국이 외교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상징적인 무대다. 한국은 20년 만에 의장국을 맡아 지난 1년간 300여 차례의 고위관리회의와 각료회의를 진행하며 ‘연결(Connect)·혁신(Innovate)·번영(Prosper)’을 주제로 핵심 의제를 정립했다. 이번 정상회에서는 △인공지능(AI) 협력 △글로벌 공급망 안정 △기후 위기 대응 △인구 구조 변화 대응 등 주요 현안이 논의될 예정이며, 그 결과를 담은 ‘경주선언’ 채택이 추진될 전망이다.

이번 경주 APEC 회의는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외교적 주도권을 실질적으로 발휘할 기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자외교 무대에서 한국이 어떤 메시지와 해법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외교 위상도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주요국 정상과 대표단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한국의 조정·중재 능력이 시험받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회의가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말이 아닌 전략으로 작동하는지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의장국으로서 한국이 회의의 설계자이자 중재자의 역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수행하느냐가 외교력의 척도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글로벌 환경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과 보호무역 강화, 일본 다카이치 내각의 우경화, 북·중·러의 전략적 연대 심화 등 복합적인 변수들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특히 미·중 경쟁 구도가 다시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동맹과 실용’의 경계선에서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안보 측면에서는 한미동맹이 필수적이지만 경제 현실은 중국과의 협력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 구조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집권 초기 외교의 무게중심을 ‘균형’에서 ‘실용’으로 옮겼다. 이는 진영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국익을 기준으로 한 현실적 대응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번 경주 APEC에서 한국이 어떤 조정력과 협상력을 보여주느냐는 이 같은 외교 기조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지표가 될 전망이다. 결국 ‘실용외교’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외교 현장에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써밋에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써밋에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 뉴시스

이번 경주 APEC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글로벌 통상 질서의 재편이다. 경주 APEC은 전통적으로 무역자유화와 다자무역 체제 강화를 핵심 가치로 삼아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됨에 따라 국제통상 환경은 요동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6년 만의 회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두 정상의 대화가 글로벌 공급망과 무역 질서의 향방을 결정할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재명 정부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의 입장을 명확히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제안한 △AI 협력 △지속가능 성장 △기후위기 대응 등 ‘경주선언’의 핵심 의제들은 단순한 외교 어젠다를 넘어 한국이 글로벌 경제·기술 협력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국제통상분야 관계자는 “공급망 안정, AI 협력, 지속가능 성장 등 핵심 의제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보여준다면 실용외교의 성과를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장국으로서 현실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반대로 선언적 수준에 머문다면 외교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외교무대의 성과는 결국 국내 정치의 안정성과도 연결된다. 국제사회에서의 신뢰와 리더십은 곧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회의 결과가 향후 외교정책의 일관성과 정치적 신뢰 회복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경주 APEC은 단순한 다자회의가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실용외교가 국제사회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리고 그 성과가 국내 정치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동맹과 실용, 이상과 현실의 교차점에 선 이재명 정부에게 경주는 외교의 무대이자 정치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