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현 감독이 ‘굿뉴스’로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했다. / 넷플릭스
변성현 감독이 ‘굿뉴스’로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했다. /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굿뉴스’는 1970년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납치된 비행기를 착륙시키고자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수상한 작전을 그린 넷플릭스 영화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 ‘길복순’ 변성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돼 일찌감치 호평을 얻었다. 

정식 공개 후에도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지난달 17일 공개된 ‘굿뉴스’는 공개 직후부터 공개 2주 차까지 한국 톱 10 영화 부문 1위 자리를 지킨 것은 물론, 글로벌 톱 10 영화(비영어) 부문 8위 및 일본·인도네시아·태국·대만 등 10개국 톱 10 리스트에 오르며 흥행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1970년 여객기 납치 사건을 모티프로 한 ‘굿뉴스’는 변성현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력으로 몰입도 높은 스토리를 완성했다. 반전과 아이러니가 공존하는 장르적 재미, 개성 있는 캐릭터와 리듬감과 위트가 넘치는 전개로 ‘웰메이드 영화의 탄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설경구·홍경·류승범부터 야마다 타카유키·시이나 깃페이·김성오·카사마츠 쇼·야마모토 나이루까지 한일 명배우들의 빈틈없는 연기 앙상블도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변성현 감독은 연출 의도와 제작 과정, 그리고 작품에 담긴 변화와 시도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특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을 이어간 그는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만족감이 있다”고 말했다.

변성현 감독이 연출에 중점을 둔 부분을 전했다. 사진은 변성현 감독과 연이어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배우 설경구 스틸. / 넷플릭스
변성현 감독이 연출에 중점을 둔 부분을 전했다. 사진은 변성현 감독과 연이어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배우 설경구 스틸. / 넷플릭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전작들과는 전혀 달랐다. 변화를 택한 이유가 있다면.

“영화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킹메이커’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너무 강조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느끼는 바를 너희도 느껴야 해’라는 식이었다.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 그 영화가 올라와서 다시 봤는데 조금 부끄러웠다. 이번에는 하고 싶은 말을 은유적으로 돌려서, 생각하게끔 만들고자 했다. 조금 더 가벼운 톤으로. ‘킹메이커’가 너무 진중한 톤으로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그걸 피하고 싶었고 그런 점에서 만족한다. 감독도 현장에서는 일종의 권력자다. 이 영화는 명언을 포함해서 권력자들에 대한, 관료주의에 대한 조롱을 담고 있다. 현장에서 감독 또한 권력자인데 자신이 만든 현장에서 ‘예스’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통해 일본 정부에서부터 한국의 감독, 그리고 우리 정부까지 희화화하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했다.” 

-블랙코미디 연출도 처음이었는데.

“원래 블랙코미디를 좋아하고 사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조금 두려웠다. 블랙코미디가 장르적 충성도가 높은 장르도 아니고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장르도 아니다. ‘기생충’이라는 걸출한 작품 때문에 그렇게 됐지만 원래는 그런 장르가 아니다. 감독들에게도 어떤 꿈의 장르기도 하거든. 진짜 선수들만 해야 하는 것 같은 장르라 나도 겁을 먹어서 못하다가 그래도 6번째 연출인데 한번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게 됐다. 다행히 재밌었던 것 같다. ‘일단 진지할 것 같으면 중간에 삐끗하자’였다. 고명이 달리다가 자꾸 넘어지는 것처럼, 너무 진지하게만 가지 않게 하려 했다. 진지함을 오래 유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콘티 작업도 전작과 다르게 진행했다고.

“이번 콘티 작업은 더 신경을 썼다. 그래서 더 오래 걸렸다. 보통 콘티 작업을 1차로 내가 한번 다 하고 2차로 촬영 감독님이 붙어서 하면 그게 최종본이 되는데 이번에는 1차를 촬영 감독님에게 맡겼다. 그리고 2차를 내가 했다. 촬영의 포지션에서, 경험자가 아닌 사람, 이 테크닉을 모르는 사람이 상상한 것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또 기존 하이재킹 영화들과는 다르게 보이고 싶어서 하이재킹 영화인데 하이재킹 장면을 넣지 않으려고 했다. 많이 봤던 장면들은 과감히 빼고 ‘사소한 걸 이렇게까지 신경 써?’ 싶은 장면들에 더 집중했다. 큰 덩어리는 흘려서 지나가자는 콘셉트가 있었다. 오히려 개인적이고 사소한 디테일에 신경 썼다. ‘은은하게 돌아있자’는 게 우리끼리 캐치프레이즈였다. 이 영화는 살짝 은은하게 돌아있어야 한다고.”

변성현 감독이 연출 비하인드를 전했다. 사진은 서고명을 연기한 홍경 스틸. / 넷플릭스
변성현 감독이 연출 비하인드를 전했다. 사진은 서고명을 연기한 홍경 스틸. / 넷플릭스

-명언을 활용한 점도 흥미로웠다. 어떤 의도였나.

“최근에 많이 느꼈던 것들인데 내가 믿었던 어떤 이야기들이 거짓일 때도 있고 어떤 건 거짓은 아니지만 애매한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 다르고 ‘어’ 다른데 거짓말은 아닌데 되게 떨떠름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명언이라는 말이 어떤 권위라고 생각했다. 일단 믿어야 하고. 명언조차 거짓말일 수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하고 이 사건을 떠올렸더니 되게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속이려고 하는 행동, 누군가를 믿게끔 하는 행동들이 있잖나. 속인다기보다 이 믿게끔 하는 행위가 그런 명언들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연결하게 됐다. 영화도 그렇잖나. 믿게끔 만드는 게 영화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는 이 구성으로 관객의 뒤통수를 싸하게 만들고 싶었다.”

-아무개가 카메라를 직접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꽤 많다. 감독의 의도는.

“아무개는 실제 사건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길 바라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아무개는 나 자신이기도 하다. 감독이 그 안에 들어가 관객에게 말을 걸고 관객이 이 사건에 직접 몰입하기보다 지켜보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거리감을 두려 했다. 그게 설명적이지 않게 잘 연출됐다면 (설)경구 선배가 그 부분을 훌륭하게 표현해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경구 선배를 믿었다. 물론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다.”

-70년대 중앙정보부장이나 영부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캐릭터가 있는데 그것에 변주를 준 점도 재미 포인트였다. 

“이런 장르에서 늘 뻔한, 강렬하고 권위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 중앙정보부장을 하는 모습은 이제 지겹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류승범에게) 아이같이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천진난만해서 자신이 악한 짓을 해도 그게 악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보통 위스키로 표현되는 장면을 우유로 바꿨다. 영부인도 그렇고 절대 실존 인물이 떠오르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관료주의적이라고 생각했던, 우스꽝스럽게 봤던 여러 사람을 조합해 만든 캐릭터였다.”

-류승범에게 연기적으로 강조한 것은. 

“중앙정보부장이 기존에는 카리스마 있고 권위적인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천진난만하지만 악한 사람, 어린아이가 몰라서 악을 저지르는 사람처럼 표현하고 싶었다. 말을 안 들으면 떼쓰고 그러다 큰일 날 것 같으면 겁먹고 우는, 그런 어린아이의 악함. 그래서 류승범에게 ‘20대 때의 에너지를 끌어내 달라’고 부탁했다. 류승범도 그걸 위해 진짜 많이 노력했다. 그 근육이 없어졌다고 하더라. 성격도 되게 많이 변했고. 그래서 목소리의 땐땐함부터 만들려고 발성부터 엄청 노력한 걸로 안다.” 

특유의 개성으로 새롭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빚어낸 류승범. / 넷플릭스
특유의 개성으로 새롭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빚어낸 류승범. / 넷플릭스

-일본 배우들이 초반 중심을 잘 잡아줬다. 어떻게 맞춰나갔나.

“자국에서 충분히 훌륭한 배우들이 우리나라 영화에 나오면 조금 어색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서 되게 유의하면서 시나리오를 썼고 일본 배우들에게도 계속 물어봤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반응하는 게 맞느냐고 조금 더 능동적으로 부탁했다. 초반 20~25분 정도를 일본인들이 끌고 가는데 한국 영화에 일본인이 나온다가 아니라 일본에서 만든 영화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많이 물어봤고 다행히 리더 역의 카사마츠 쇼가 한국어를 수준급으로 해서 소통을 많이 도와준 게 유효했던 것 같다.”

-일본 배우 캐스팅 과정은.

“이 이야기와 시나리오의 방향을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야마다 타카유키 말로는 일본에는 관료주의를 비꼬는 풍자 영화가 많지 않다고 하더라. 그런 점에서 재밌어서 참여했다고 했다. 야마다의 워낙 팬이라 거절당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한번 찔러나 보자는 마음으로 연락했는데 흔쾌히 승낙했다. 내 영화들이 일본에서도 다 개봉했는데 ‘길복순’ 때문에 나를 알고 있더라. 다른 배우들도 난항은 없었다. 다만 내가 일본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이 아니라서 배우들을 서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울리는 배우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배우들의 클립을 모아서 줬고 그중에 좋은 부분이 있으면 그 영화를 찾아서 보며 진행했다.”

-설경구와 또 한 번 함께했다. 설경구가 감독을 향한 믿음으로 출연을 결심했다고 하더라. 무한한 신뢰를 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이쯤 되면 믿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정도로 오래 했으면.(웃음) ‘불한당’ 때 제일 많이 티격태격했었는데 그때 신뢰가 생겼던 것 같다. 그 작품을 통해서 선배가 ‘지천명 아이돌’이 됐는데 내가 그걸 예상하고 한 것도 아니고 몰랐던 일이라 그런 결괏값이 신뢰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전적으로 믿어주더라. 원래는 본인이 질문이 해결되지 않으면 잘 안 움직이는데 이번엔 풀리지 않아도 ‘어떻게 해’ ‘이게 맞아?’ 정도만 물어봤다. 워낙 친절하고 따뜻한 분이다. 워낙 좋아하는 형님이고 선배님이다.”

-극장 개봉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나도 이 영화는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되게 많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 가장 뜻이 잘 맞았던 곳이 넷플릭스였다. 다른 제작사와 극장 개봉을 추진할 수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합이 잘 맞게 할 수 있진 않았을 거다. 어느 정도 만족선에 오르는 방향성으로 갈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 나는 ‘넷플릭스 작품’이냐 ‘극장 개봉’이냐의 문제보다 좋은 방향으로 손뼉이 잘 마주칠 수 있다면, 좋은 영화라면 가리지 않고 뭐든지 하고 싶다. 시리즈물은 자신이 없지만 영화라는 포맷 안에서는 OTT든 극장이든 재미있는 작업이라면 다 하고 싶다.”

-‘킹메이커’를 만들고 깨달은 것을 이번 작품에 반영했다고 했는데 ‘굿뉴스’를 만들고 깨달은 점도 있나.

“이번에는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당연히 영화를 보면 후회되는 장면이나 저건 좀 부족했다 싶은 부분은 있지만 이번에는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다 한 것 같아서 큰 아쉬움은 없다. 다행히 하나 만족한 게 있다면, ‘킹메이커’에서의 실수를 이번에 만회한 것 같다는 점이다. 작가로서 만족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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