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독점 기업 ‘네트워크’의 지배 하에 모든 것이 통제되는 미래 사회. 직장에서 해고된 벤 리처즈(글렌 파월 분)는 아픈 딸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리얼리티 쇼 ‘더 러닝 맨’에 참가한다.
30일간 끝까지 살아남으면 10억 달러의 상금이 주어지는 서바이벌 게임 ‘더 러닝 맨’. 하지만 잔혹한 전문 헌터들이 참가자를 쫓고 시청자들은 실시간 제보를 이어가며 이 모든 과정은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지금껏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게임에 목숨을 걸고 뛰어든 벤 리처즈는 단숨에 전 세계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계속될수록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알게 되고 보란 듯이 판을 뒤집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게임을 이끌어가기 시작한다.
영화 ‘더 러닝 맨’은 실직한 가장 벤 리처즈가 거액의 상금을 위해 30일간 잔인한 추격자들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글로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펼쳐지는 추격 액션 블록버스터다.
미국 국가 예술 훈장을 받은 거장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자 1987년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첫 영화 이후 38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신작으로, ‘베이비 드라이버’의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기대를 모은다.
원작 소설의 기본 구조와 세계관을 따르면서도 현대 감각에 맞춰 재해석해 보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소설이 빈부 격차와 미디어 통제 아래 생존을 강요당하는 한 남자의 절박한 투쟁을 그렸다면, 영화는 이를 확장해 현실과 미디어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참가자를 ‘사냥감’으로 소비하는 폭력적 여론과 선정적 콘텐츠 경쟁, 온라인 음모론과 딥페이크 등 현대 미디어 환경과 이슈를 적극적으로 끌어와 원작이 지닌 디스토피아적 메시지를 현실적인 질문으로 변주한다. 이를 통해 1987년 영화가 잃어버린 사회비판의 맥락을 재획득한다.
주인공 벤 리처즈 역시 단순한 액션 히어로가 아니라 약자의 위치에서 벗어나려는 생존자이자 저항자로 재정의돼 영웅적 서사보다 감정적 동력과 인간적 결핍에 초점이 맞춰진다. 빈곤과 절망 속에 몰린 가장의 비극을 강조한 원작과 근육질 영웅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1987년 영화판 모두와 결을 달리하는 지점으로, 액션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으로서 영화적 쾌감을 주는 동시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확장돼 관객을 설득한다. 그래서 영화가 던지는 ‘한 방’이 더 짜릿하게 다가온다.
장르적 쾌감도 놓치지 않는다. 감각적인 연출과 속도감 넘치는 액션으로 전 세계 관객과 평단을 사로잡아온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강점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특유의 스타일리시함과 리듬감 있는 연출로 133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꽉 채운다. 대규모 세트와 실제 로케이션을 아낌없이 활용한 스펙터클한 볼거리와 압도적인 규모의 액션 시퀀스까지 쉼 없이 펼쳐져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음악도 좋다. ‘그래비티’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 다큐멘터리 ‘데이비드 에튼버러: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로 에미상을 수상한 스티븐 프라이스 음악감독이 에드가 라이트 감독과 다섯 번째로 호흡을 맞춰, 게임 쇼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경쾌하고 활기찬 사운드와 감정이 진하게 스며든 스코어까지 완성도 높은 음악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몰입을 배가한다.
글렌 파월도 제 몫, 그 이상을 해낸다. 평범한 가장이자 소시민 벤 리처즈 그 자체로 분해 강도 높은 액션을 대부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하며 완성도를 높인 것은 물론, 절박한 생존 본능과 뜨거운 분노 사이를 오가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쌓아 올리며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완성한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내가 가장 흥미롭고도 인상 깊게 느낀 점은 거의 40년 전에 읽은 책이 지금 보니 섬뜩할 정도로 앞날을 예견한 것처럼 다가온다는 사실”이라며 “‘더 러닝 맨’은 현실과 연기, 조작과 진실의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바로 그 오락에 대한 집착을 정확히 포착한다”고 말했다. 러닝타임 133분, 오는 12월 10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