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10만㎢ 남짓의 국토에서 극명하게 다른 문제들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사람들이 너무 밀집한데 따른 각종 도시문제가 넘쳐난다. 반면 지방은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드는데 따른 농촌문제가 심각하다. 모두 해결이 쉽지 않은 당면과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바로 청년들의 귀농이다. 하지만 이 역시 농사는 물론, 여러 사람 사는 문제와 얽혀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사위크>는 청년 귀농의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여기, 그 험로를 걷고 있는 용감한 90년대생 동갑내기 부부의 발자국을 따라 가보자. [편집자주]
시사위크|청양=박우주 올해 여름, 정말 뜨겁기도 뜨겁고 길기도 길다. 우리 부부는 연일 “진짜 덥다” “지옥 같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선을 넘은 더위가 매일 이어지니까 지쳐만 간다. 작년과 재작년엔 그래도 비가 자주 와서 하우스에서 일하면 시원하고 좋았는데, 올해는 다르다. 하루하루 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다. 하지만 농부는 여름에 일을 해야 하고, 언제나 그렇듯 나름의 방법을 찾아 여름을 이겨내고 있다.
요즘 뉴스에서는 농사일을 하다 돌아가시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곤 한다. 나도 농사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 머리가 핑 돌 때가 있다. 귀농 2년차였던 때에는 참깨 수확을 하다 어지러워서 하루 종일 누워있던 적도 있었다. 젊은 청년인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어르신들은 얼마나 힘들지 걱정이 앞선다.
농사일을 잘 모르는 사람들 시각에선 왜 굳이 더운데 무리해서 일을 하는지 의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농산물은 시기에 맞춰 필요한 일이 있다. 각각의 단계에서 제때 일을 하지 않으면 수확량이 뚝 떨어진다. 수확을 때맞춰 잘 해줘야 열매도 좋고 다음 열매도 빨리나온다. 또 병에 들지 않아 약값도 안 든다. 무엇보다 농사의 결실인 수확은 곧 농부의 수익과 직결된다. 덥다고 미룰 수 있는 게 아닌 거다.
그래서 중요한 게 휴식이다. 제 아무리 수확이 중요하다 해도 건강이 최우선인건 당연하다. 폭염경보가 매일 울리는 날씨에 농사일에만 매진하다보면 몸이 상하기 쉽고, 결국 일을 할 수 없게 돼 더 큰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적절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우리도 시간을 맞춰놓고 1시간정도 일을 하면 5분정도는 꼭 쉰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물이나 이온음료를 마신다. 예전에는 그냥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서 쉬었는데 캠핑의자를 사고서 휴식의 질이 한층 높아졌다. 계속 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힘들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쉴 때 편하게 쉬면 확실히 힘이 난다.
특히 염분, 당분이 함유돼있는 음료를 마시는 게 좋다. 우리는 이온 음료나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거나 달달한 믹스커피를 마실 때도 있다, 귀농했을 때 어르신들이 여름철에 커피 같은 걸 페트병에 들고 다니시면서 드시는걸 보고 뭔지 여쭤봤었는데 물에 간장을 희석한 거라고 하셔서 놀란 적이 있다. 그때는 웃기기도 했는데, 이후 농사일과 여름을 직접 겪고는 삶의 지혜구나 생각했다. 다만, 아직 간장 물은 도전 안 해봤다.
뜨거운 여름날 가장 펄펄 끓는 시간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요즘 우리의 하루일과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간단하게 식사하고, 5시에 나가 일을 시작한다. 아직은 어두컴컴할 때지만 생각보단 잘 보이고, 30분 정도 일하다보면 서서히 환해진다. 그러다 9시쯤 되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옷이 땀으로 젖고 ‘덥다’, ‘힘들다’ 생각하며 꾹 참고 11시까지 일을 한다. 11시가 되면 집 앞으로 돌아와 수확한 구기자를 세척하고 말린다. 그럼 12시정도 되고, 그때쯤 집에 들어가 씻고 밥을 먹은 뒤 휴식시간을 갖는다. 이때면 둘 다 지쳐서 말이 없다. 나는 낮잠을 자거나 컴퓨터를 하고, 낮잠을 자지 않는 아내는 소파에서 티비를 본다.
그러다가 오후 4시가 되면 다시 나간다. 4시면 아직 뜨겁지만, 그래도 하우스 차광막이 있어서 버틸 수 있다. 6시쯤 되면 더위가 조금은 꺾이기 시작한다. 저녁 7시 반까지 수확을 한 뒤 세척 등 뒷정리를 하고, 집에 들어가서 다시 씻고 밥 먹고 정리하고 쉬면 밤 10시다. 그렇게 하루일과를 마치고 잠을 잔다.
우리처럼 작은 농장을 운영해도 수확 철이 되면 이렇게 고된 육체노동의 하루일과를 보내게 된다. 수확 철이 아니면 그나마 널널한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수확 철에는 농사일 외에 아무것도 못 한다. 이때 ‘그동안 많이 쉬었으니까 고생하자’, ‘이것 또한 지나간다’라는 생각을 하면 힘이 좀 난다.
더위가 절정이었던 8월 초에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오셔서 함께 일을 하기도 했다. 일손이 6명으로 늘었으니 일도 더 많이, 빨리하고 좀 쉴 수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한여름 농사일은 처음인 가족들은 숨 막히는 더위와 일의 강도에 깜짝 놀랐다. 평소처럼 새벽 5시에 일을 시작했는데, 9시가 되니까 다들 너무 힘들어 하셔서 일을 빨리 끝냈다. 오후엔 아예 일을 못하고 고생만 하다 가셨다. 앞으로 여름에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생각이다.
온도를 낮추기 위한 시도도 이것저것 해봤다. ‘넥 밴드’라고 요즘 뜨는 아이템도 써봤다. 얼려서 목에 두르는 건데, 처음엔 엄청 시원해서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너무 더워서 그런지 30분만 지나면 다 녹았고, 이후 오히려 뜨거워지고 불편했다. 그래서 딱 30분 만이라도 시원하게 사용할 용도로 오후에 쓰고 있다.
아내의 강력한 주장으로 대형선풍기도 샀다. 구기자를 딸 때 시원하게 하기 위해서다. 근데 문제가 있었다. 수확 일은 이동을 하면서 하기 때문에 선풍기도 20분마다 옮겨야 했다. 또 그때마다 선풍기를 둘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쉴 때만 이용하고 있다. 그렇게 사지말자고 했는데 아내의 고집을 못 꺾는다.
대신, 올해 가장 만족한 ‘꿀템’도 있다. ‘썬 쉐이드’, 일명 차광막이다. 아내가 올해 사자고 한 것 중에 가장 잘 샀다. 작업할 때 햇빛을 차단하고 작업할 수 있어서 한결 시원하고 좋다. 가격을 생각해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우리는 아직 농업관련 시설이 부족하다. 보조를 받아서 작업장이나 하우스를 만들고 싶은데 올해 선정이 안 됐다. 지금 나오는 보조들은 우리가 신청하기 힘든 조건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이것저것 꾸민다. 다른 큰 농장들은 작업장이 있어서 시원하고 편하게 일을 하는데, 그 정도 시설을 갖추려면 수백만원 이상이 들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부담이 크지 않은 선에서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다. 썬 쉐이드도 그 중 하나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지독한 여름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거다. 올해 수확도 곧 끝난다. 구기자는 9월에 다시 꽃이 피고 10월 중순에 수확 철이 다시 시작되는데 가을 수확은 뜨겁지 않아서 여름보다 훨씬 편하다. 여름에 고생한 만큼 더 많은 열매를 기대하고 있다.
박우주·유지현 부부
-1990년생 동갑내기
-2018년 서울생활을 접고 결혼과 동시에 청양군으로 귀농
-현재 고추와 구기자를 재배하며 ‘참동애농원’ 운영 중
-유튜브 청양농부참동TV 운영 중 (구독자수 4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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