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10만㎢ 남짓의 국토에서 극명하게 다른 문제들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사람들이 너무 밀집한데 따른 각종 도시문제가 넘쳐난다. 반면 지방은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드는데 따른 농촌문제가 심각하다. 모두 해결이 쉽지 않은 당면과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바로 청년들의 귀농이다. 하지만 이 역시 농사는 물론, 여러 사람 사는 문제와 얽혀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사위크>는 청년 귀농의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여기, 그 험로를 걷고 있는 용감한 90년대생 동갑내기 부부의 발자국을 따라 가보자. [편집자주]
시사위크|청양=박우주 요즘 지역축제들이 많은 관심과 인기를 끌고 있다. 그중에서도 ‘김천 김밥축제’가 큰 화제였는데,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다는 생각이 든다. 김천이란 도시에 무려 10만명이나 모여들게 했고, 뻥튀기를 접시로 사용하는 등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참 훌륭했다.
서울 같은 도시에서 열리는 축제도 그렇겠지만, 지역에게 축제는 정말 크고 중요한 행사다. 1년 중 가장 많은 외부인들이 방문하기 때문에 지역을 홍보하고, 지역 내에 활기를 불어넣을 절호의 기회다.
전국적으로 참 다양한 축제들이 열린다. 대부분 그 지역 명물을 주제로 한 축제들이다. 귀농을 한 뒤 8월~10월 무렵이 되니 주변이 온통 축제였고, 우리도 다양한 지역의 축제를 찾아 즐기곤 했다. 우리가 사는 충남 청양 역시 9월초까지 지역 특산물을 앞세운 ‘고추구기자문화축제’가 열린다. 우리도 5년 전에는 축제에 참가해 농산물을 팔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이 축제에 참가한 적도, 찾아본 적도 없다. 왜 그럴까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때 여러모로 상처를 입은 것 같다. 당시 우리는 귀농인 단체로 축제에 참가해 부스를 하나 마련했다. 청양군에서 만든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사람들끼리 뭉쳐 부스를 운영한 거다. 15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함께 준비하고, 시간을 나눠 부스를 지키며 농산물을 팔았다. 그렇게 3일 동안 우리가 번 돈은 겨우 20만원이었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인구가 3만명도 안 되는 청양의 고추구기자문화축제에 8만명이 방문하고, 매출도 13억원이나 올렸다고 한다. 5년 전과 지금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잘 되는 곳만 잘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에겐 5년 전의 상처가 꽤나 크게 남아있는 것 같다.
그래도 지역축제는 없어지면 안 되고 잘 발전해야 한다. 나도 처음엔 왜 이런 시골에서 세금을 낭비해가며 축제를 열까, 차라리 그 돈을 다른 데 쓰는 게 낫지 않나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살아보니 지역축제가 무척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혈세낭비로 보일 수 있지만, 축제를 통해 수많은 농업인과 지역주민들이 수익과 배움을 얻는다.
고추가 유명한 청양의 경우 축제를 통해서만 4억원이 넘는 고추가 판매된다. 고추를 재배하는 농업인들이 만든 모임에서 고추를 판매하는데, 온라인 판매가 어려운 어르신들에겐 아주 소중한 판로가 된다. 고추 뿐 아니라 구기자, 표고버섯, 메론 등의 농산물도 마찬가지다. 축제장에 빠질 수 없는 먹거리 부스를 통해서도 중요한 수익이 발생한다.
또 지역축제를 가면 주민들이 여러 공연을 하는 걸 볼 수 있다. 지역에선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여러 배움의 기회를 주는데, 이를 기반으로 공연을 준비한다. 지역은 도시에 비해 학원 같은 게 부족하다보니 다양한 배움의 기회가 적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지역차원에서 이런 혜택을 마련하는 거고, 그 투자가 다시 지역축제를 채울 콘텐츠로 이어지는 좋은 구조다.
아쉬운 점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홍보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역축제, 나아가 지역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하고 있는 것들을 잘 알릴 필요도 있다. 물론 지금도 블로그나 유튜브, 언론보도 등을 통해 홍보를 하고 있지만, 종합적으로 알리기엔 한계가 있다. 아예 홍보책자를 만들어서 우편으로 보내면 많은 주민들이 더 잘 알고, 자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매년 명절이면 군수님의 편지 같은 우편이 오는데 그것보단 청양군이 열심히 하고 있는 것들, 잘 하고 있는 것들을 1년에 한 번이라도 확실히 알리면 좋겠다.
고추구기자문화축제도 있지만, 내가 청양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축제는 바로 ‘청양 알프스마을 얼음축제’다. 우리도 3번 정도 축제를 찾아 즐겼다. 멋진 조형물들이 있어 볼거리도 있고, 먹거리와 즐길거리도 풍부하다. 연인이나 친구는 물론, 가족단위로도 찾기 좋다. 겨울이 춥고, 충남 알프스로 불리는 청양에 딱 맞는 아이디어가 뛰어난 축제다.
특히 이 축제는 두 달 정도 이어진다. 보통 지역축제들이 3일 정도 하는 것과 달리 기간이 길어 더 많은 수익과 효과를 낼 수 있다. 주변 마을 분들이 행사 보조나 음식을 팔며 지역경제에 활기를 얻고, 충남 도립대학교 학생들이 겨울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10년 정도 된 이 축제는 100여명의 마을사람들이 의기투합해 세금을 쓰지 않고 만들었다. 그런데도 매년 20만명 이상이 찾는다.
나도 처음에 귀농을 할 때 이렇게 부가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걸 꿈꿨었다. 하지만 몇 년을 지내며 경험해보니 현실적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다. 엄청난 땅이 필요한데다 혼자 할 수는 없는 일인데, 사람들과 뜻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주변에 뭔가 새로운 시도나 변화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이 꼭 있기 때문이다.
5년 전 우리가 고추구기자문화축제에 참가해 입었던 상처, 그리고 청양 알프스마을 얼음축제의 성공을 짚어보면, 지역축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더 뚜렷하게 보인다.
박우주·유지현 부부
-1990년생 동갑내기
-2018년 서울생활을 접고 결혼과 동시에 청양군으로 귀농
-현재 고추와 구기자를 재배하며 ‘참동애농원’ 운영 중
-유튜브 청양농부참동TV 운영 중 (구독자수 4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