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세종과학기지 하계연구대 ‘야생동물팀’ 인터뷰
김유나 극지연구소 생명과학연구본부 연구원
김지희 극지연구소 생명과학연구본부 연수연구원
이혁재 극지연구소 생명과학연구본부 연구원
얼음의 땅 ‘남극’은 흔히 ‘미지의 대륙’이라 불린다. 인류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끝’ 남극에서 지구의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남극세종과학기지의 월동연구대와 하계연구대가 그들이다. 거대한 빙하, 바다를 떠도는 유빙,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블리자드(눈보라). 어떤 위험에도 그들은 남극을 지킨다. 우리는 이들을 ‘국가대표 극지인’라 부르기로 했다. 시사위크 남극특별취재팀이 남극세종과학기지를 찾아 그들을 만나봤다. [남극특별취재팀=김두완 기자, 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남극=남극특별취재팀 척박한 ‘남극’에도 생명은 자란다. 메마른 바위를 뒤덮은 이끼부터 해표‧혹등고래 등 대형 해양포유동물, 펭귄‧갈매기 등 조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동‧식물이 남극을 생명의 땅으로 바꿔놓는다. 매년 전 세계 연구자들이 ‘킹조지섬(King George Island)’을 방문하는 것도 이 생명체들을 연구하기 위함이다.
‘극지연구소 야생동물팀’도 그들 중 하나다. 극지연구소 생명과학연구본부 소속 남극 하계연구대로 남극세종과학기지(이하 ‘세종기지)를 방문한 야생동물팀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 펭귄, 도둑갈매기 등 남극 야생조류연구를 진행했다. ‘시사위크’ 남극특별취재팀은 김유나, 김지희, 이혁재 연구원으로 구성된 야생동물팀 3인방, 일명 ‘펭귄팀’의 유쾌한 남극 연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 6시간, 거친 남극을 달리는 ‘강철 체력’ 연구자들
“천천히 걸으면서 샘플을 채취할 예정이라 그렇게 힘들진 않을 거예요.”
12월, 거센 파도를 헤치며 조디악(고무보트)을 타고 야생동물팀과 연구 현장으로 이동하는 길, 김지희 박사와 이혁재 연구원이 웃으며 말했다. 보트에서 저 멀리 보이는 험준한 남극 지형에 걱정이 가득한 취재팀의 얼굴을 보고 한 말이다.
약 30분간 조디악을 타고 도착한 곳은 ‘포터소만(Potter cove)’. 남극 킹조지섬 바톤반도에 위치한 작은 만이다. 푸른빛을 내뿜는 거대한 ‘포어카데 빙하(Fourcade Glacier)’와, 남극의 거센 바람 때문에 꼭대기만 눈이 쌓이지 않는 ‘누나타크(Nunatak)’ 지형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포터소만 주위로 갈색빛의 이끼들이 땅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남극 반도에서 다양한 해양 생물 연구, 기후 변화 영향 연구가 이뤄지는 곳임이 체감됐다. 특히 인근에는 여러 종의 남극 조류(Bird)가 서식하고 있었다. 야생동물팀은 이곳에서 남극 조류의 둥지 분포 및 번식 현황 파악 연구를 진행했다.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포터소만은 상상 이상으로 험난했다. 부서진 자갈들은 칼날처럼 등산화를 찔렀다. 거칠고 날카로운 바위와 50도 경사가 넘는 언덕길은 한발 한발 내딛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하지만 야생동물팀 연구자들은 이 거친 지형이 전혀 문제가 아니라는 듯, 일사불란하게 주변을 조사했다. 이런 강행군을 매일 4~6시간씩 진행했다. 그야말로 ‘강철 체력’의 연구자들이었다.
험난한 생태환경을 연구하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혁재 연구원은 “남극은 꿈 같은 곳”이라며, “야생동물과 교감하며 연구를 진행할 수 있어 오히려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힘들지 않다”고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야생동물팀 연구원들은 땅바닥에 특정한 표식을 하며 이동했다. ‘새들의 둥지’임을 표시하는 것인데, 남극제비갈매기나 남방큰재갈매기 등 남극에서 서식하는 조류들은 나무가 아닌 돌바닥, 땅바닥, 바위틈에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기 때문이다.
김지희 박사는 “새들의 알은 돌멩이‧바위 등 주변 환경과 잘 구별이 되지 않는 색을 띠고 있다”며 “자칫 다른 연구자들이 밟고 지나갈 수도 있다. 때문에 이런 표시를 해놓는다”고 설명했다.
◇ 남극 마스코트 ‘펭귄’, 생물학적 ‘지표’ 역할도
포터소만 인근을 조사한 후 야생동물팀과 ‘ASPA No. 171 나레브스키 포인트’, 일명 ‘펭귄마을’로 이동했다. 펭귄마을은 세종기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해안가 언덕에 위치한 남극특별보호구역이다.
펭귄마을은 우리나라 주도로 지정된 특별보호구역이다. 2009년 4월 제32차 남극조약 협의당사국 회의에서 최종 승인받았다. 펭귄마을은 우리나라의 환경부 및 외교부와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ATCM)의 허가를 받은 연구자 및 관계자들만 방문할 수 있다. 펭귄팀에 따르면 현재 약 4,000쌍의 ‘젠투펭귄(Gentoo penguin)’과 2,500쌍의 ‘턱끈펭귄(Chinstrap penguin)’이 살고 있으며, 아델리펭귄, 마카로니펭귄들도 자주 방문한다고 한다.
야생동물팀의 별명이 ‘펭귄팀’인 이유를 펭귄마을에 도착해 알 수 있었다. 연구팀은 거의 매일 펭귄마을을 방문해 젠투펭귄, 턱끈펭귄 두 종의 생태를 중점적으로 관찰·연구하고 있다. 주로 부화한 새끼수, 아직 부화가 이뤄지지 않은 알의 개체수 등을 직접 조사한다. 또한 펭귄의 분변, 혈액, 토사물 등 샘플도 채취한다. 이는 먹이 생태 변화 및 질병 관리 연구를 진행하기 위함이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이오로깅(Bio-logging)’을 이용한 펭귄들의 습성 연구다. 바이오로깅이란 동물의 몸에 센서나 카메라 등을 부착해 행동을 관찰하는 연구방식이다. 관찰 대상의 이동, 주변 환경 데이터를 연속적으로 수집할 수 있어 펭귄을 비롯한 다양한 조류, 어류, 해양포유류 연구에 적극 이용된다. 또한 개체수 식별을 위해 알과 펭귄의 몸에 펜, 염색약으로 식별 번호를 표시하기도 한다.
야생동물팀이 펭귄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펭귄이 남극에서 ‘지표종(Indicator species)’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지표종이란 생물학에서 특정지역의 환경상태를 측정하는 척도로 이용되는 생물을 말한다. 예컨대 펭귄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거나 감소한다면 이는 남극 생태계 전체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영국옥스포드대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서 “젠투펭귄 분변에서 관찰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은 생태학적, 생리적, 먹이환경 요인에 있어 극지 조류의 유전정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기 위한 기준이 된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마이크로바이오옴이란 특정 환경에 존재하는 미생물과 유전정보를 의미한다.
김유나 박사는 “펭귄은 남극의 상위 포식자이면서 개체군 숫자가 안정적이라 생태학적 중요한 지표종으로 꼽힌다”며 “이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남극 환경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박설민 기자, 김두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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