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세종과학기지 안승민 제38차 월동연구대 고층대기 대원 인터뷰
월동대 연구반, 고층대기 관측 장비 운영, 자료수집·분석 및 처리 업무
얼음의 땅 ‘남극’은 흔히 ‘미지의 대륙’이라 불린다. 인류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끝’ 남극에서 지구의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남극세종과학기지의 월동연구대와 하계연구대가 그들이다. 거대한 빙하, 바다를 떠도는 유빙,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블리자드(눈보라). 어떤 위험에도 그들은 남극을 지킨다. 우리는 이들을 ‘국가대표 극지인’라 부르기로 했다. 시사위크 남극특별취재팀이 남극세종과학기지를 찾아 그들을 만나봤다. [남극특별취재팀=김두완 기자, 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남극=남극특별취재팀 남극 하늘은 고요하다. 비행하는 항공기, 헬리콥터는 거의 볼 수 없다. 도심의 매연도, 불빛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구상 그 어떤 곳보다 선명한 밤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전 세계 천문학자들은 그 우주를 관찰하기 위해 매년 1만km 떨어진 남극대륙을 방문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남극 우주하늘을 관측하기 위한 연구시설이 남극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에서 운영되고 있다. 각 기지의 월동대원 중 ‘고층대기’ 대원이 이를 담당한다. 이번 세종기지 38차 월동연구대에선 안승민 고층대기 대원이 연구 임무를 맡게 됐다.
◇ 쇼트트랙부터 남극까지… “일단 해보는 거죠”
“좋아하는 일에서는 의심을 가지지 않고 추진하는 편이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린다. 남극 역시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 남극에 꼭 가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이번에 월동대에 합류하게 됐다.”
시사위크와 만난 안승민 대원의 첫마디다. 안승민 대원은 세종기지 제38차 월동연구대의 홍일점이자 막내다. 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가진 월동대원이다. 한번 목표를 잡으면 성공과 실패에 상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것이 안승민 대원의 말이다.
남극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어린 시절 꿈이었기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때문에 처음 남극 월동대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걱정도 컸다. 하지만 안승민 대원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안승민 대원은 “어린 시절 ‘남극에서 살아남기’라는 만화책을 보고 남극에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며 “부모님도 이번 도전에 걱정을 하시긴 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결국 저의 선택을 응원해 주셨다”고 말했다.
물론 막무가내로 도전한 것만은 아니다. 어렵게 잡은 기회인 만큼 안승민 대원은 월동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한다. 체력 훈련부터 1년 동안 어떤 연구를 할지, 또 세종기지에서 어떻게 생활할지를 하나하나 계획했다. 심지어 다른 월동대원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대학교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당구 연습까지 했다.
안승민 대원은 “원래 고립된 환경에서도 잘 지내는 성격이긴 하지만 전자 피아노, 드럼, 닌텐도 등 지루한 상황에서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며 “코딩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능하다면 고층대기 데이터를 관리하고 수집하는데 필요한 자동화 소프트웨어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 남극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고층대기 대원’
월동대원들은 기지 관리와 하계대 지원 등 여러 공동 임무를 해야 한다. 하지만 각자 별도의 주요 임무도 부여받는다. 안승민 대원은 대기 관측 장비로 고층대기의 특성과 기후변화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업무를 수행 중이다.
고층대기란 60~1,000km 상공의 영역이다. 지구를 둘러싼 공기층은 크게 △대류권 △성층권 △중간권 △열권의 4개층으로 이뤄진다. 이때 중간권과 열권 사이에 위치한 곳이 고층대기다.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우주 영역이다.
과학자들이 남극까지 와서 고층대기 연구를 하는 이유는 ‘지구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우주공간’이라는 데 있다. 특히 극지 고층대기는 태양, 태양풍, 자기권 등 외부 우주환경으로부터 지구로 유입되는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영역이다. 때문에 우주기상현상, 대기파동현상 변화 등의 연구를 위해선 고층대기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
고층대기 대원으로서 연구자들은 안승민 대원이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사위크가 세종기지에서 만났던 고층대기 연구 전문가 김정한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열정과 실력을 모두 갖춘 고층대기 대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승민 대원이 우수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전공 분야와도 연관이 있다. 대학교 학부생 시절 안승민 대원은 인공위성 탑재 소프트웨어인 ‘플라이소프트웨어’도 개발한 바 있다. 인공위성의 전력 조절 장치와 지상에서 통신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또한 이미지 데이터 분석 시스템 개발도 공부한 적 있다고 한다.
안승민 대원은 “계획은 전공인 인공위성 분야 연구 실적으로 취업하려고 했다”며 “남극 월동대라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 지금은 1년 동안 고층대기 분야를 공부해 전공인 인공위성 연구와 연결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월동대를 마친 뒤 남극 고층대기 관측용 기기를 인공위성에 탑재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연구를 진행해 보고 싶다”며 “인공위성 운용은 대기 모델을 활용하는데 아직 100% 정확한 모델이 없는 만큼 여기서 고층대기 데이터를 적용할 수 있다면 더 우수한 예측 모델 개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 홍일점·막내의 부담감… “도움 되는 월동대원이고 싶어”
안승민 대원은 걱정이 많다. 월동대 막내이자 홍일점이기 때문이다. 또 고된 업무가 많은 월동대 특성상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여성대원이라 주변에 피해가 갈지 몰라서라고 한다. 사실 안승민 대원은 강철 체력의 소유자다. 쇼트트랙 대회에 참여할 정도로 운동을 열심히 했다. 호기심에 일반인 동호회로 쇼트트랙을 했다고 말했지만 강한 체력과 더불어 스케이팅 실력이 제법 훌륭하다.
안승민 대원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현장 업무에 나선다. 베테랑 남성 대원도 어려워하는 해상작업 보조요원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무거운 전신 방수복을 입고 조디악 보트가 해안가에 정박할 때 보조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수심이 발목 높이 정도인 해안가에서 직접 물에 들어가 조디악 보트를 밀고 정박하는 업무로 체력 소모가 상당한 작업이다.
주요 업무인 고층대기 연구도 체력적으로 고된 일이다. 매일 같이 고층대기 관측 레이다(RADAR)와 안테나, 통신장비들을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속 15m에 육박하는 강풍,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이를 점검·수리하는 것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다. 특히 고층대기 관측동이 위치한 지형은 날카롭게 깎인 자갈들과 얼음, 질척거리는 땅으로 그냥 서 있기도 힘든 곳이다.
지난 12월 시사위크가 세종기지를 방문했을 당시, 안승민 대원은 김정한 책임연구원과 ‘유성 레이다(Meteor Radar)’를 수리하고 있었다. 유성에 전파를 쏘아올려 관측하는 장비다. 당시 강풍과 눈보라가 치는 상황이었음에도 안승민 대원은 5시간 동안 휴식 한번 없이 수리 작업을 이어갔다.
안승민 대원은 “남극 세종기지에서의 생활은 춥고 거친 지형뿐만 아니라 여러 강도 높은 노동이 많아 힘들긴 하다”라면서도 “한국에서 해볼 수 없는 일을 경험해 볼 수 있어 행복하고, 기지와 월동대에 하나라도 더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남극은 빛, 소음, 전파, 환경오염 등의 제약에서 벗어난 순수 자연 환경으로 과학 연구에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라 생각한다”며 “이런 중요한 곳에 위치한 세종기지는 우리가 과학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는 의미라 생각하고 이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 박설민 기자, 김두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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