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사회적 지위, 경제수준 등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자신이 가장 약해지는 순간, 타인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대표적으로 아프게 될 때 우리는 ‘돌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듦에 따라 ‘돌봄 노동’은 사회에 꼭 필요한 분야로 주목받고 있지만,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는 녹록지 않다.
지난 2018년 서울 시청 앞에서 요양보호사들은 ‘돌봄요양노동자 권리선언문’을 발표하고 이들이 현장에서 경험하는 부조리함을 세상에 알렸다.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담당하는 최일선 인력인 요양보호사는 대다수 중장년 여성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6월 공개한 ‘통계로 보는 여성’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0년~2022년)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여성의 평균 비율은 약 88.5%로, 이들 중 50대가 41%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60대 28.6% △40대 21.5%로 뒤를 이었다.
요양보호사들은 돌봄 현장에서 다양한 차별과 위험에 노출되고 있었다. 이날 이들은 ‘어이’ ‘아줌마’ 등의 호칭으로 불리며 멸시를 당하고 있으며, 하녀 취급을 받으며 일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김장부터 제사상, 명절상을 차리는 등 대상자 1인 요양이 아닌 가족 돌봄 노동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안전망도 없는 빌라 4층 창문을 닦아달라는 등의 부당한 업무 외 서비스에 시달리는 고충도 털어놨다.
특히 요양보호사들은 집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혼자 일하는 근무 환경 때문에 보호자나 이용자로부터 폭력‧폭언과 성추행을 경험하게 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2인 1조’ 팀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근무조건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7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요양보호사의 노동 환경은 제자리걸음이다. 서울요양보호사협회 정찬미 협회장은 <시사위크>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요양보호사에 대한 노동환경은 변화하지 않았다”며 “여전히 일자리는 호출형 단기간 노동으로 불안정하고 성희롱이나 폭언 등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요양보호사는 무슨 일이든 시키면 하는 사람으로 인식돼 있다”며 “김장철에 많은 양의 마늘 까기 등을 요구하거나, 농촌의 경우 서비스 시간에 맞춰 밭일을 시켜 어르신 서비스가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요양보호사로 젊은 세대가 유입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정찬미 협회장은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으로 돌봄이 저평가 되고 있으며, 단시간 호출형 노동 형태로 불안정해 젊은층이 선호하지 않고 있다”며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280만명이 넘는데도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은 65만명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계속해서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국내 요양보호사 부족란은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에서는 (부족한 요양보호사 인력을 채우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유입하려고 하고 있다. 이는 돌봄 시장의 대혼란을 예상하게 하며, 문화적 차이와 언어 장벽으로 인한 서비스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돌봄을 제대로 평가하고 요양보호사의 적정 임금 기준 마련, 주25시간 최소 노동시간 보장, 돌봄노동자의 인권 보호가 필요하다. 요양보호사를 이용하는 가정이 증가하는 만큼 (요양보호사에 대한) 호칭이나 업무범위를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공영방송 등의 광고를 통해 국민적 인식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역사적으로 돌봄은 여성에게 부과된 개인적 책임으로 간주돼 왔다. 가사노동, 아이 돌봄, 어르신 돌봄 등은 어머니 혹은 아내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희생과 봉사’의 차원으로 여겨져 왔다. 이로 인해 인간의 생존과 사회적 안정을 위해 돌봄 노동이 꼭 필요함에도 아직까지 돌봄에 대한 경제‧사회적 가치는 과소평가되고 있다. 체력적 소비뿐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은 직업임에도 돌봄 노동자의 급여 수준은 최저 임금 수준에 그치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해 국제노동기구 ILO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12차 총회에서 ‘괜찮은 일자리와 돌봄 경제’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ILO는 돌봄 경제가 전 세계적으로 3억8,100만개의 일자리로 구성되고, 전체 고용의 약 11.5%, 전 세계 GDP의 8.7%의 경제 비중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적지 않은 노동 시장임에도 한국 사회에서 돌봄 노동에 대한 가치 평가는 충분치 않다. 이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법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10월 발의된 ‘돌봄노동자의 권리보장과 처우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은 현재 국회에 멈춰 있다. 돌봄 수요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돌봄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돌봄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방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