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용산=조윤찬 기자 게임이용장애를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등재하는 것을 두고 과학적인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술 이용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최초 사례이기 때문이다.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으면 표면적 행동에 초점을 맞춰 잘못된 치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제시됐다.
◇ 과학적 근거 확보 필요… “국제 공동 연구 절실”
18일 게임과학연구원과 디그라한국학회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25 게임과학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게임이용장애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주제로 학계 전문가들의 연구 발표를 진행했다.
심포지엄에는 유럽연구위원회 지원으로 진행된 ‘게임이용장애의 존재론적 재구성’ 프로젝트 연구진인 핀란드 유베스큘라대학교 벨리 마띠 카홀라티 교수와 진예원 이화여자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교수가 참석해 연구 현황을 공유했다.
벨리 마띠 교수는 1만명의 핀란드인을 대상으로 게임이용장애 설문을 진행한 결과를 공유했다. 44명이 게임이용장애가 있어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응답했고, 1명은 게임중독자가 아니라 도박중독자였다.
이에 게임이용장애에 게임과 도박을 함께 다루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임이용장애의 정의에 대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게임과 도박을 분리해 연구하는 건 더욱 중요하다.
벨리 마띠 교수는 “66명의 게임이용장애 연구 저자들에게 도박을 제외하고 연구했는지 물어봤다”며 “이에 13명이 응답했는데, 이들은 도박을 제외하고 연구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지난 2019년 ICD(국제질병분류)-11에 게임이용장애를 등록했다. 현행 ‘통계법’은 통계청이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 통계를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법개정이 없다면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도 게임이용장애가 등록된다. 학계와 게임업계의 비판에 통계청은 아직까지 게임이용장애 도입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해외 연구자들이 자국에서 게임이용장애가 도입될 것인지에 대해 전망한 의견도 공유됐다.
진예원 교수는 대만, 독일, 말레이시아, 미국, 스페인, 슬로바키아, 인도, 일본, 중국, 프랑스, 핀란드, 호주 등 12개 국가 전문가 의견을 수집했다. 해당 12개 국가는 게임이용장애를 자국의 질병분류체계에 등재하지 않았다.
슬로바키아, 핀란드, 프랑스 3개 국가 전문가들은 자국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게임이용장애가 질병분류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나머지 9개 국가 전문가들은 도입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고 전망했다.
프랑스의 임상심리학자 바네사 발로는 진예원 교수에게 “게임이용장애라는 개념은 실제 확인 가능한 기저질환보다 ‘게임’이라는 표면적 증상에 초점을 맞춰 부적절한 치료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제가 본 환자들은 게임이용장애가 아니라 괴롭힘, 자폐 스펙트럼 장애, 사회공포증, 경계선 장애 등을 겪고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 임상심리학자 크리스 퍼거슨은 “특정 행동을 지나치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 정말 염려한다면 왜 쇼핑, 음식 중독 등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포괄적인 ‘행동 중독 장애’를 만들지 않는가. WHO의 결정은 명백히 과학이 아닌 도덕적 공황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진 교수는 “12개국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게임이용장애가 독립적인 진단으로 타당성을 가지기 위해서 경험적, 신뢰 가능한 연구와 충분한 근거가 반드시 요구된다고 봤다”며 “ICD-11의 게임이용장애는 공식 질병 등재 수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게임이용장애라는 게 진짜 존재하는 것인지도 적극 연구할 필요가 있다”며 “사회문화적 맥락을 반영하는 국제 공동 연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