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대법원은 대한민국의 최고법원이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일상생활의 중요한 법적 분쟁에 있어 최종적인 판단을 담당한다. 즉 대법원은 우리 사회의 법질서 확립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추적인 기관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대법관 증원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상고사건의 증가로 대법원이 ‘법령 해석 통일’과 ‘국민의 권리구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 어려워 대법관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서면서 정쟁화됐다.
◇ 대법관 증원… 본질 벗어난 정쟁화
대법관 증원 이슈는 6.3대선 과정에서 대법원의 대선 개입 논란이 불거지자 더불어민주당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일명 ‘대법관 증원법’을 발의하면서 이슈화됐다. 대법원은 이재명 당시 후보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이례적인 속도로 유죄 취지 파기환송했고, 이에 민주당이 강하게 반발하며 대법원의 공정성과 신속성 및 다양성 확보를 이유로 ‘대법관 증원법’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여론을 의식했던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비법조인 대법관’ 임명 법안을 발의했던 박범계 의원에게 철회를 요구, 논쟁을 잠재웠다.
그러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마친 4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소위원회를 열고 민주당 주도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의 골자는 현재 14명의 대법관을 30명 증원하는 것이다. 해당 법안은 대법관 수를 매년 4명씩 4년간 16명을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다만 법률이 공표된 뒤 1년간 유예한 뒤에 시행한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표결에 앞서 “대법관 증원의 근거가 없다”고 항의하며 퇴장해 민주당 단독으로 법안이 처리됐다.
‘통합’을 강조한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시작 직후 해당 법안이 법사위 소위를 통과했다는 점과, 수적 우위를 앞세운 민주당 단독 처리란 점에서 정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대법관 증원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만큼 법안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풀이된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5일 출근길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대법관 증원법’과 관련해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 법사위 소위를 통과한 대법관 증원법 관련해 의견서 제출 계획을 묻는 말에 조 대법원장은 “대법원의 본래 기능과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개편 방향을 국회에 계속 설명할 계획”이라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대법관 증원으로 재판 지연과 대법관 다양화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여러 가지 얽혀있는 문제이고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려 있는 문제고, 오랫동안 논의해 온 문제이기 때문에 행정처를 통해 좀 더 설명해 드리고 계속 논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대법관 증원이 갖는 제도적 함의
사실 대법관 증원 법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제19대 국회부터 현재까지 대법관 수를 늘리는 법안이 지속 발의된 바 있다. 특히 지난 제21대 국회에서는 판사 출신 이탄희 전 의원이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48명으로 3배 이상 대폭 증원하는 법안을 발의해 주목받기도 했다.
대법관 증원의 근본적인 취지는 상고심 제도 개선에 있다. 최근 10년간 대법원은 매년 약 3만에서 5만 건(법원행정처 2024 사법연감) 정도의 상고심 본안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14명의 대법관 중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면 12명의 대법관이 매년 약 4,000건씩 사건을 처리하는 셈이다. 때문에 대법관들의 재판 업무 부담이 과중하다는 지적이 지속 제기됐다.
또 그로 인해 사건 상당수가 ‘심리불속행 기각(특정 사건에 대해 법원이 다툼의 대상이 되는 이의 제기를 기각하는 것)’으로 종결 처리됨에 따라 사법 수요자는 상고심 재판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증폭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업무 과중은 재판 업무에 기능적으로 숙련된 고위직 법관 위주로 대법관 자리가 허용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50대 남성 △특정 대학 출신 △전현직 법관 등의 공식이 생기며 진입장벽을 형성한 것이다. 결국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 문제를 낳았다.
대법원 판결이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선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지위 △세대 △성별 등 다양한 가치가 토론에 반영돼야 한다. 이는 대법원이 사회적 배경이나 직업적 이력 등이 다양한 대법관들로 구성될 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특정 고위 법관으로만 구성된 대법원은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는데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3심급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서 상고심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전제조건이 대법관 증원이었던 셈이다. 대법관 증원을 통해 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함으로써 충실한 상고심 심리 및 상고심 사건 적체 해소를 기여하기 위한 시도다.
한편 민주당은 조만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법관 증원법’을 의결하고 본회의에 넘길것으로 전망된다.
관련기사
- [대선공약 - 사법개혁] 국민의 ‘사법적 권리 보장’ 후보 누구?
- 민주당, ‘비법조인 임명·대법관 100명 확대’ 법안 철회
- ‘조희대 특검법’… 사법 개혁 시발점 될까
- 이준석, 민주당 ‘조희대 특검법’ 추진 비판
- 권성동, ‘대법원 대선개입’ 청문회 강력 비판
- “조희대, 재판지휘권 남용으로 국민 신뢰 무너뜨려”
- “희대의 사법 쿠데타” 논란 일파만파
-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 연기… ‘절차’ 뒤에 숨은 칼날
- ‘법원의 날’과 임시회의… 조희대 침묵 깰까
- 정청래, 조희대 ‘사퇴’ 요구… “반이재명 정치투쟁 선봉장 돼”
- 사법개혁 향한 법원장들의 언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