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임신은 축복이고, 엄마는 행복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임신부에게 가지는 오래된 통념이다. 그러나 현실 속 임신부들은 신체적 변화, 호르몬의 변화 등 여러 요인으로 우울·불안을 경험하기 쉽지만, 사회적 통념에 의해 ‘행복하지 못한 자신’을 숨겨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곤 한다. 더욱이 모성애가 당연하다는 사회적 압박은 오히려 정서적 고통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는 온라인 ‘맘카페’ 게시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난임 끝에 어렵게 임신했지만 신체 변화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례, 원치 않은 쌍둥이 임신으로 힘들어하는 사례 등 사연은 다양했다. 사연은 각기 달랐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자책했고, 이를 드러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다.
2021년 경남대학교 간호학과 이은주 부교수는 ‘임신 중 우울 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를 통해 “참여자들은 임신으로 인한 신체 변화가 고통스럽고 충격적이었으며, 자신이 모성이라는 인식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마주하게 된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사회적 관념상 임신과 관련된 신체 고통은 정상적인 것이며,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문제시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며 “여자로서의 삶이 어머니로 바뀌는 과정에서 마땅히 적응해야 하는 것으로 강요되지만 우울한 여성들에게 임신으로 인한 변화는 몸과 마음이 모두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과 혼란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 임신부 상담 수요 폭증… 상담인력‧시설부족 해결해야 할 과제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임신부가 마음을 치유하고 기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라는 점도 짚어봐야 할 문제다. 임신부는 태아 건강 우려로 약물 복용에 제약이 있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데 심리적 부담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보다 문턱이 낮은 민간 상담 센터의 경우, 보험 적용이 어려워 비용적 측면에서 부담이 크다. 이는 임산부들이 공공 서비스에 눈을 돌리게 되는 배경이 된다.
현재 정부는 권역별 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를 운영 중에 있다. 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는 △대면 △화상 △전화 등을 통해 1인 당 최대 10회의 상담을 무료로 제공한다. 임신부는 물론이고 △난임부부 △유산 및 사산 경험 부부 △출산 후 12주 이내 산모 △출산한 지 12주 이상부터 36개월 이내 여성 △출산 후 84개월 이내 미혼모 등이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지난 9월 19일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2022~2025.6월 연도별 센터별 상담 유형별 이용건수’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만 대면 상담이 3,516건 진행됐다. 이는 2022년 대면 상담 진행 수 4,162건의 절반 이상에 해당 하는 수치로, 출산 전‧후 여성의 정신건강 서비스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는 시설 부족으로 보편적 서비스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는 중앙센터를 포함해 전국 12개소가 설치‧운영 중에 있으며, 서울 지역에만 5곳이 운영돼 지역별 접근성이 낮은 실정이다. 현재 부산‧울산 등의 지역에는 상담센터가 설치되지 않아 서비스 제공의 불균형을 이룬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전명욱 국립중앙의료원 중앙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장은 시사위크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는 임신기부터 출산, 산후뿐 아니라 난임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부, 그리고 유산이나 사산을 경험한 분들까지 지원하고 있다”며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서 상담, 정서적지지, 조기선별과 진료 연계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는 상담 인력과 시설 부족이 여전히 큰 과제”라며 “권역센터 확충과 접근성 강화를 통해 이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임신부 상담이 정보제공에서 시작해 조기 선별, 그리고 전문 진료로 연계되는 흐름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전(前) 중앙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 이수영 자문위원은 “나 역시 의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의사가 임신한 환자에게 약을 준다는 게 환자뿐 아니라 의사 역시도 부담스러운 일”이라면서 “병원에 온다고 무조건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부담스러워 하시는 경향이 크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비약물적 옵션이 많아지는 게 필요하고, 이를 공공의 영역에서 이뤄지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