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민지 기자 한국에서 산후우울증에 대한 조사는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임신부의 정신건강을 다룬 공공 통계는 찾아보기 어렵다. 임신 중 경험하는 우울과 불안을 제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임신부의 마음을 파악하고 있을까.
먼저 벨기에는 임신부의 정신건강을 조기에 파악하기 위해 조산사가 산전 진료 과정에서 심리사회적 평가를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임신 16주 차에 첫 번째 심리사회적 평가를 실시해 위험군을 선별하고, 이어 20~21주 차 초음파 검사 시점에 우울 증상 확인 도구인 ‘Whooley questions’와 불안장애를 스크리닝 도구인 ‘GAD-7(Generalized Anxiety Disorder 7-item)’ 척도 등을 활용해 추가 선별을 진행한다.
만약 임신부의 점수가 기준치를 넘을 경우 산부인과에서 근무하는 임상 평가를 위한 심리학자 또는 정신과 의사에게 임상 평가가 의뢰된다. 진단이 확정된 임신부는 조산사, 산부인과 의사, 사회복지사 등이 참여하는 다학제 협력 체계 속에서 치료를 받게 되며, 치료는 산부인과 병동에서 직접 제공된다.
핀란드 역시 국가 지침에 따라 산전 진료 시 다양한 표준화된 질문과 선별도구를 활용해 임신부의 심리사회적 위험 요인을 선별하고 정기적으로 모니터링 하도록 하고 있다.
또 핀란드는 임신 13~18주 차에 시행되는 건강검진에서 임신부의 정신건강과 사회적 지지망에 대한 평가가 포함되며, 같은 검진이 임신 35~36주 차에 다시 시행된다. 검사 결과의 심각도에 따라 산전 클리닉, 정신건강클리닉, 가족상담센터 중 한 곳에서 지원을 받게 되며, 최근에는 병원과 협력해 ‘주산기 정신의학 외래 클리닉’을 새로 설립해 산전 정신건강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인구가 약 50만명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 몰타는 2016~2024년 육아 국가 전략 정책(Parenting National Strategy Policy)과 부모-영아 정신건강 연합(Parent-Infant Mental Health Alliance)의 영향을 받아 여성과 가족을 위한 주산기 정신건강 돌봄 체계 변화가 도입됐다.
이에 몰타는 국가 전체의 주산기 인구를 커버할 수 있는 규모의 ‘주산기 정신건강 전문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2021년부터 전국적으로 산전‧산후 정신건강 정기 선별검사가 시범도입 중에 있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듯, 임신 중 정신건강 관리는 개인이 이겨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더욱이 임신이 여성에게 고통과 불안, 부담감으로만 남는 한 유의미한 출산율 반등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반쪽짜리 정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저출산 대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임신 단계부터 정서적 부담을 줄이고 심리적 안전망을 강화하려는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전명욱 국립중앙의료원 중앙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장은 서면을 통해 “임신부의 정신건강 문제가 저출생의 단일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출산을 결정하거나 지속하기 어려운 다양한 요인들 가운데 한 축을 차지할 수 있다”며 적절히 돌보지 못한 정신건강 문제는 산모의 삶의 질 저하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산모와 영아 모두에게 위험을 초래하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사회적으로도 간과할 수 없는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State of perinatal mental health care in the WHO region of Europe: a scoping review
| 2024.03 | Frontiers in Psychiatry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