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대장동 항소 포기 파문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그러나 정작 논란의 발단인 검찰은 책임 공방의 소용돌이에서 한발 비켜선 모양새다.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수사팀이 서로 다른 설명을 내놓으며 혼선을 키웠고, 여야는 이를 ‘정권 외압’과 ‘조작 기소’라는 맞불 프레임으로 증폭시켰다. 논쟁이 확대될수록 대장동 수사·기소 과정에서 꾸준히 제기돼온 핵심 문제들, △무리한 수사 △부실한 입증 △정치적 프레임 남용 △항소심 회피 의혹 등은 오히려 가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정치검찰 프레임 벗어나… 정쟁보다 검증 필요
지난 7일 검찰은 유동규·김만배·남욱 등 대장동 민간업자들에 대한 항소를 포기했다. 일부 피고인은 검찰 구형보다 낮은 형을 받았지만, 유동규 전 본부장은 구형보다 높은 8년이 선고됐다. 검찰은 이를 두고 “항소 실익이 낮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수사·공판팀은 항소 결재까지 이미 마쳐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은 “중앙지검 의견은 달랐다”며 사의를 표명했고, 반면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중앙지검장과 협의해 본인의 책임으로 결정했다”고 했다. 동일한 결정을 두고 지휘부·지검장·수사팀의 설명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이 상반된 충돌은 사태를 명확히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논란을 확산시켰다. 누가 언제 어떤 근거로 항소 포기를 최종 결정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지휘부와 수사라인이 내놓은 엇갈린 메시지는 곧바로 정치권으로 넘어가 새로운 공방의 불씨가 됐다. 여야는 이를 ‘외압 의혹’과 ‘조작 기소 의혹’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전선화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정치검찰의 전형적 작동 방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명확한 판단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뒤늦게 상충된 설명을 흘려 혼란을 키우고, 이 혼란이 정치권의 정쟁으로 비화되면 여론의 초점이 검찰에서 정치권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검찰이 감당해야 할 책임은 희미해지고, 쟁점은 정치권의 전면전으로 치환된다. 이번 사안이 복잡해진 이유도 이 같은 구조 때문이다. 대장동 사건뿐 아니라, 그동안 제기돼 온 검찰의 △무리한 수사·기소 방식 △진술 강압 논란 △정치적 프레임 남용 의혹 등이 한꺼번에 뒤엉켜있기 때문이다.
대장동 1심은 민간업자들의 배임 혐의를 인정하며 기본적 사실관계를 정리했다. 그러나 검찰이 수년간 유지해 온 ‘이재명 배임 공모’ 프레임은 이번 재판에서 직접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가 공모 구조를 전제로 한 검찰의 주장에 명확한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리면서, 수사·기소 전략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도 다시 불거졌다.
이런 상황에서 남욱 변호사가 최근 법정에서 “검사가 ‘배를 가르겠다’며 협박했다”고 증언한 사실까지 더해지며 강압 수사·진술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항소가 이뤄졌다면 이러한 쟁점들이 항소심에서 다시 검증될 여지가 있었지만, 항소 포기 결정으로 그 기회는 사라졌다.
한 법조인은 “검찰이 실제로 수사·기소 과정의 문제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항소심을 회피하려 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며 “항소 포기 논란을 정치 공방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검찰에 유리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결정은 수사 부담과 정치적 부담을 동시에 줄이는 효과를 낳기 위한 전략 있었다는 해석이다.
이번 사건이 더욱 복잡해진 배경에는 ‘무리한 상소 관행’을 둘러싼 논쟁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개월여 전 국무회의에서 “검사들이 무죄가 나올 걸 알고도 항소와 상고를 반복해 국민에게 고통을 준다”며 검찰 상소제도의 전면적인 개선을 주문했다. 이러한 기류가 대장동 사건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항소 포기 결정은 이 문제의식마저 정치 공방 속에 묻어버린 채 혼란만 키운 상황이 됐다.
결국 논쟁의 질문은 “왜 항소하지 않았나”라는 절차적 문제를 넘어, “검찰이 상급심에서 드러날 수 있는 수사의 한계를 회피하려 한 것 아니냐”는 근본적 의문으로 이동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외압·내부 갈등 속 ‘곤혹스러운 결정’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항소를 제기할 경우 검찰이 얻을 실익이 거의 없었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1심에서 이재명 대통령과의 배임 공모 구조는 인정되지 않았고, 강압 수사·진술 논란까지 불거진 상황에서 항소를 제기할 경우 오히려 검찰의 수사와 기소 전반이 항소심에서 더 깊게 검증받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검찰이 갈등과 혼선을 전면에 내세워 마치 ‘외압에 흔들린 피해자’처럼 비치는 구도를 스스로 연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의 움직임은 검찰의 계산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갈등 프레임을 내세워 일시적으로 시선을 분산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치권이 그 구도를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분석한다.
여야 모두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며 서로 다른 방향에서 검찰 판단의 정당성을 문제 삼고 있다. 결국 논쟁의 종착점은 다시 검찰의 수사·기소 책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그는 “지금은 잠시 프레임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 뿐, 곧 검찰의 판단 과정과 책임 소재가 전면적으로 검증대에 오르는 국면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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