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이진숙 전 대전 MBC 사장을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 지명했다.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이 시작한 공영방송 이사 선임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전 사장 역시 “방송이 지금은 공기가 아니라 흉기”라며 공영방송 개편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따라서 야당의 탄핵안 발의와 위원장의 사퇴가 반복되는 ‘방통위원장 잔혹사’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이 전 사장에 대한 인선을 발표했다. 정 실장은 “(이 전 사장은) 언론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왔고 경영인으로서도 관리 능력과 소통 능력을 고루 갖추고 있다”며 “오랜 기간 언론계에서 쌓아온 경험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방통위의 운영을 정상화하고 미디어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확보하여 방송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나갈 적임자”라고 말했다.
이번 인선은 지난 2일 김 전 위원장이 자진사퇴를 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김 전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는 8월 임기가 만료되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2인 체제’에서 의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권 추천 인사가 배제된 ‘2인 체제’ 운영이 위법하다고 주장해 온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김 전 위원장의 탄핵안을 발의했다. 사실상 김 전 위원장이 추진한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하루 뒤인 지난달 28일 방통위 회의를 주재하고 KBS·방송문화진흥원(방문진)·EBS 임원 선임계획을 의결하고, KBS와 방문진 이사공모를 진행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의결될 경우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위원장 직무가 정지되는 등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다. 과거 YTN 매각 등을 추진한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탄핵안 표결 전 자진사퇴한 것과 동일한 양상이다.
◇ 이진숙 내정에 발끈한 민주당
이 전 사장은 방통위원장 업무를 시작하는 동시에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마무리 지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가 이 전 사장에 대한 인사청문 절차를 진행하는 데 최소 20일 이상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이 기간에 지원자들의 인사검증 등 절차를 끝내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여권의 생각이다. 방통위원장의 경우 국회의 ‘반대’에도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걸림돌도 없다.
이 전 사장 역시 공영방송 개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이날 지명 소감에서 “방송이 지금은 공기가 아니라 흉기라고 불리기도 한다”며 “특히 공영방송이 그런 비판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어 “공영방송, 공영언론의 다수 구성원이 민주노총의 조직원”이라며 “정치권력, 상업 권력의 압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먼저 그 공영방송들이 노동 권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독립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 전 사장 임명에 야당은 들끓고 있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방송장악을 이어 나가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며 “윤석열 대통령 수준에 딱 맞다”고 힐난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소속 국회 과방위원회 위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연이은 인사실패, 인사 참사로 이성을 잃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 인사”라고 쏘아붙였다. MBC 아나운서 출신인 한준호 민주당 의원은 “같은 기자에게도 탄핵된 이진숙을 방통위원장에 임명한 윤석열 정부의 인사기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윤 대통령을 향해 이 전 사장에 대한 ‘지명철회’를 촉구했다. 임명을 강행할 경우 다시금 ‘탄핵안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도 내비쳤다. 국회 과방위원인 김현 민주당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임명이 강행될 경우 탄핵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의원도 “정부가 이번 지명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이진숙은 이번에는 국민으로부터 또다시 ‘탄핵’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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