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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실라키스 사장, ‘벤츠의 품격’ 끝까지 지키길
[기자수첩] 실라키스 사장, ‘벤츠의 품격’ 끝까지 지키길
  • 권정두 기자
  • 승인 2020.07.24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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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메르세데스-벤츠는 수입차업계 굴지의 1위 브랜드다. 한때 BMW에 밀려 만년 2위의 설움을 겪었지만, 2016년 마침내 1위에 등극하더니 지난해까지 4년 연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 역시 공고한 독주체제 속에 1위를 지킬 전망이다.

벤츠를 1위로 이끈 주인공은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사장이다. 2015년 부임한 그는 이듬해 벤츠를 한국 수입차업계 1위에 올려놓았고, 이후 입지를 더욱 확고하게 다져놓았다. 중요한 국내 행사에 한복을 입고 등장하는가 하면, 서울시 외국인 명예시민으로 선정되는 등 적극적인 소통 노력과 남다른 ‘한국 사랑’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실라키스 사장은 한국에 없다. 지난 5월, 벤츠 코리아는 실라키스 사장이 오는 8월을 기해 5년의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나게 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후임은 뵨 하우버 벤츠 스웨덴·덴마크 사장이다. 실라키스 사장의 행선지는 당초 미국으로 발표됐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이후 캐나다로 변경됐다.

수입차 브랜드 사장이 임기를 마치고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실라키스 사장의 뒷모습은 썩 개운치 않다.

환경부는 지난 5월 초, 배출가스 조작 혐의로 벤츠 코리아에 776억원의 과징금 철퇴를 내리고 검찰 고발조치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5월말과 6월 중순 두 차례에 걸쳐 벤츠 코리아 본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라키스 사장의 임기 만료 및 후임을 알린 벤츠 코리아의 인사 발표는 환경부의 배출가스 조작 적발 발표 며칠 전에 이뤄졌다. 그것도 실라키스 사장의 임기가 아직 석 달여 남은 시점이었다. 이어 실라키스 사장은 환경부의 배출가스 조작 적발 발표 이후 한국을 떠났다. 검찰의 벤츠 코리아 압수수색 당시엔 이미 한국을 떠난 상태였다. 출국 사유는 해외출장이다.

아직 기소 또는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지거나 소환조사가 예정되지 않았던 만큼, 그의 출국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사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인사를 발표하고, 출국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실라키스 사장은 배출가스 조작 혐의의 핵심 책임자가 될 수 있는 인물이다.

논란이 일자 실라키스 사장은 몇몇 언론사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서의 5년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아울러 해외출장은 검찰 수사와 무관하며, 향후 잘 협조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렇지만 캐나다에 머물게 될 그를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물음표를 지우기 어렵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소환조사가 가능할까. 실라키스 사장이 정말 응할까. 또 만약 기소된다면, 재판 및 처벌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더욱이 앞서 비슷한 혐의로 기소됐던 요하네스 타머 전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총괄사장은 본격적인 재판 개시를 앞두고 고국으로 돌아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재판은 공전을 거듭하고 있고, 범죄인 인도 절차는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실라키스가 타머의 뒤를 따르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부디 실라키스 사장이 벤츠의 품격을 지키길 바란다. 한국에서의 5년 동안 큰 성공을 거두고, 화려한 경력을 추가하게 된 만큼, 응당 책임질 일이 있다면 떳떳하게 임하길 바란다.

수사를 회피하고, ‘도망자’로 전락한다면 5년의 성공은 빛이 바래 얼룩질 것이다. 벤츠의 위상에도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수입차업계에 ‘나쁜 선례’가 또 하나 남고, 업계 자체의 신뢰가 크게 흔들릴 것이다. 단순히 실라키스 사장과 벤츠만의 문제가 아닌 셈이다. 업계 1위인만큼, 이러한 측면 또한 절대 외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