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당장 효과 안나도 장기적으로 시장 활성화 촉진… 공급 확대에도 기여”
시민단체 “주거 환경 정비에서 투기로 변질될 가능성 커…지역간 격차 발생도 우려”

최근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 방안을 연내 마련하기로 했다./뉴시스
최근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 방안을 연내 마련하기로 했다./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정부가 지난달 27일 비상경제민생대책회의를 열고 재건축 안전진단 개선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재건축 사업이 가속화 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안전진단 규제 완화가 곧 투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 정부, 재건축 추진 첫 단계 ‘안전진단‘ 규제완화 추진

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 추진 과정에서 겪는 첫 단계로 관할 지자체는 안전진단을 통해 노후화된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시행 여부를 판단한다.

안전진단 실시 과정에서 전문기관은 구조안전성, 주거환경, 시설노후도, 비용분석(경제성) 등 각각 4개 분야로 나눠 노후 아파트 단지를 평가한다.

지난 2018년 초 문재인 정부는 안전진단 기준을 개선해 ‘구조안전성 20%, 주거환경 40%, 시설노후도 30%, 비용분석 10%’ 였던 기존 항목별 가중치를 ‘구조안정성 50%, 주거환경 15%, 시설노후도 25%, 비용분석 10%’로 각각 변경 조정했다.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재건축 사업추진을 결정하는 첫 단추인 안전진단의 절차와 기준이 지속 완화돼 왔다”면서 “이로 인해 현재 안전진단은 사업 추진 필요성을 결정하는 본래의 기능이 훼손되고 형식적인 절차로서만 운영 중인 상황”이라며 제도 개선 이유를 설명했다.

가중치 비중이 가장 큰 구조안전성에는 △건물 기울기 △기초 침하 △내하력(콘크리트 강도, 용접상태, 철근 상태 등) △내구성 등이 평가 항목으로 속해 있다.

안전진단을 실시하는 전문기관은 재건축 사업을 신청한 아파트 단지를 상대로 정밀 검사에 착수한 뒤 A~E까지 등급을 부여할 수 있다.

A부터 C급을 판정받은 아파트는 유지‧보수만으로 충분히 거주가 가능하다고 판단돼 원칙적으로 재건축을 불허한다. D등급의 경우 조건부 재건축으로 분류돼 공공기관의 추가 검증 후 기준을 충족하면 재건축을 판정받게 된다. E등급은 재건축이 확정 허용된다. 

일각에서는 과거 문재인 정부가 안전진단 항목별 가중치를 조정한 이후 재건축 허용이 감소세로 전환됐고 그 결과 시장 내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다며 문제 제기해왔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었던 올해 초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8월 16일 국토교통부는 ‘국민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발표하면서 구조안전성 가중치 비중을 현행 50%에서 30~40% 수준으로 완화하고 주거환경 항목의 배점을 30%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3월 문재인 정부 때 구조안전성 비중 상향(20→50%) 조정 후 서울의 재건축 사업 안전진단통과율은 56곳(제도 개선 전 3년간)에서 5곳(제도 개선 후 3년간)으로 대폭 감소했다.

정부는 연내 재건축 안전진단 개선 방안을 논의한 뒤 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달 중순 은마아파트가 서울시 도시계획위 심의를 통과하면서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뉴시스
지난달 중순 은마아파트가 서울시 도시계획위 심의를 통과하면서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뉴시스

◇ 건설업계 “안전진단 규제 완화, 즉시 효과 나지 않아도 시장 활성화에 기여”

일단 건설업계는 정부 방침에 환영하면서도 시장 내에서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이번 제도 개선 추진이 시장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주고 있다고 해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A건설사 관계자는 “안전진단시 아파트의 내구성, 노후화 정도, 새로 짓는 비용과 유지·보수 비용 간 비교 등 종합적인 부분을 조사하게 된다”며 “이 과정에서 규정상 경계에 걸려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업장도 여럿 있다. 예를 들어 벽에 금간 수준이 50㎠ 이상돼야 통과되는데 49.9㎠라 통과되지 못하는 사례 등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를 완화할 경우 이처럼 규제 허들에 걸려 사업이 좌절됐던 기존 재건축 사업장들의 사업 진행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그동안은 더 오랜 기간 노후화가 진행 됐어야만 안전진단이 통과됐다. 때문에 안전진단을 신청하고도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가 수두룩 했다”고 부연했다.

또한 그는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완화가 바로 재건축 시장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겠지만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따라서 장기적으로 볼 때 재건축 사업이 촉진되면서 시장도 점점 활성화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B건설사 관계자는 “아무래도 안전진단 규제를 완화한다면 재건축을 추진하려는 단지들이 늘어나면서 사업 자체도 활기를 띠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며 “이는 곧 공급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뒤이어 “그간 안전진단 기준이 높아 사업이 좌절된 사례가 많았다”면서 “D·E등급 받아야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는데 30년 이상 노후화된 단지들도 C등급을 받아 재건축을 포기한 사례가 다반사였다”고 덧붙였다.

지난 8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재건축 완화 추진 등이 담긴 국민주거안정실현방안을 발표했다./뉴시스
지난 8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재건축 완화 추진 등이 담긴 국민주거안정실현방안을 발표했다./뉴시스

◇ 시민단체 “쉬운 재건축 허용, 사회적 자원 낭비 및 지역간 격차 발생”

건설업계 예상과 달리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가 사회적 자원 낭비로 이어지고 재건축 사업도 대도심 위주로만 이뤄져 지역간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백인길 경제정의실천연합 도시개혁센터 이사장은 “한마디로 정부가 재건축을 쉽게 허용하겠다는 소리인데 이는 자칫 당초 목적인 열악한 주거환경 정비에서 투기 목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뒤이어 “재건축 사업은 주택 노후화, 열악한 주변 주거환경 등을 정비해 재생하려는 제도”라면서도 “그러나 아쉽게도 국민 대부분은 재건축 사업을 재산 증식 수단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안전진단 규제 완화 이후 노후하지도 않은 주택을 재건축한다면 이는 사회적 자원 낭비”라며 “안전진단 통과가 쉬워지면 재건축 사업 과정에서 용적률 완화까지 진행될 수 있는데 이때 자본이 몰리면서 투기로 변질될 가능성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구조안전성 비중을 50%에서 30~40%로 낮춘다는 것은 아직까지 거주하기 괜찮은 수준인데도 재건축을 허용해주겠다는 것”이라며 “이처럼 안전진단이 변경된다면 사업성이 좋은 대도심 등의 지역에서는 재건축 사업이 몰릴테고 정작 재건축이 필요한 지방 등은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소외되면서 곧 지역간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염려했다.

이강훈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겸 변호사는 정부가 규제 완화 보다는 오래 거주 가능한 튼튼한 아파트를 짓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강훈 부집행위원장은 “먼저 금리인상 여파로 대출이 어려운 상황이라 웬만한 규제완화로는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화기 어렵다”면서 “안전진단 규제 완화 또한 당장 현 상황을 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안전진단 규제 완화는 사회적 자원낭비, 지역간 격차 등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며 “최근 아파트들의 노후화 기준을 30년으로 판단하는 것은 너무 짧다. 실제 과거 MB정부 때 이명박 대통령도 40~50년 이상인 아파트도 충분히 거주지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환경오염 방지 및 사회적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해 100년 이상 거주 가능한 튼튼한 아파트를 만들려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일부 단지는 싱크대에서 녹물이 나온다는 이유로 재건축을 추진하려 하는데 이런 경우는 재건축 보다는 물이 흐르는 배수관 등을 전면 교체하면 된다”고 꼬집었다.

또 “규제가 완화되면 당연히 사업성이 높은 서울, 수도권 등에 재건축 시도가 몰릴 것”이라며 “이에 반해 수도권 외곽지역, 지방 등은 사업성이 안된다는 이유로 철저히 소외되면서 지역간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끝으로 그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재건축 관련 정책이 일관성 없이 바뀌고 있다”며 “정부는 재건축 안전진단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할 때 규제 완화가 끼칠 환경적 요인, 투입 비용, 사업성, 당초 목적인 주거환경 정비, 정책의 일관성 등을 종합 고려해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근거자료 및 출처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후속조치 계획
2022.10.27 기획재정부
재건축부담금 합리화 방안
2022.9.29 국토교통부
백인길 경제정의실천연합 도시개혁센터 이사장 인터뷰 
2022.11.1 경실련
이강훈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인터뷰
2022.11.2 참여연대

 

해당 기사는 2022년 11월 2일 오후 4시 55분경 포털사이트 등으로 최종 출고되었으나,  이후 취재원(경실련) 측으로부터 인터뷰이의 이름과 부서명에 오기가 있음을 알려와 11월 7일 오후 4시 20분경 아래와 같이 수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 (수정 전)

- 백인기 경제정의실천연합 토지개혁센터 이사장


▲ (수정 후)  

- 백인길 경제정의실천연합 도시개혁센터 이사장
 

※ 시사위크는 ‘기사수정이력제’를 통하여 기사가 수정된 이유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저널리즘의 가치를 높이고, 언론의 사회적 책무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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