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육아휴직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확대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실효성 측면에선 여전히 물음표가 남습니다. / 게티이지미뱅크
정부가 육아휴직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확대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실효성 측면에선 여전히 물음표가 남습니다. / 게티이지미뱅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긴 추석 명절연휴가 지나고 이제 완연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으로 세 아이와 함께한 이번 추석은 모처럼 양가 부모님과 모두 시간을 보내며 또 하나의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들어 제 주변에서는 부쩍 아기 소식이 자주 들려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부부가 또래에 비해 조금 빨리 아이를 낳은 편이다보니 그런 거 같은데요. 첫 아기를 가진 이들의 기쁨과 걱정, 설렘을 보면 새삼 그때의 제 모습과 감정이 떠오르곤 합니다. 벌써 6년이나 지났는데도 생생하네요.

유치원생부터 돌쟁이까지 세 아이를 둔 부모다보니 이제 막 아기를 가진 지인들을 만나면 질문세례를 받곤 합니다. 저희에겐 지나간 추억이거나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이 그들에겐 소중한 ‘꿀팁’이 되는 건데요. 제가 꼭 빼먹지 않는 조언은 첫째 아이를 출산하러 가기 전에 가능하면 든든히 먹어두라는 겁니다. 경황이 없어 잘 챙겨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첫째는 대체로 진통시간이 길기 때문에 버틸 힘이 꼭 필요합니다. 첫째를 낳던 때 14시간 넘게 배고픔과도 싸워야했던 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죠.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 중 하나는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건데요. 이제 막 아기가 생겨 잘은 모르지만 뉴스 등을 통해 ‘육아휴직 확대’ 같은 소식을 막연히 접해왔다 보니 언제,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선뜻 감이 오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 남편도 육아휴직을 써야 할지, 아내의 육아휴직 기간이 끝날 때 이어서 써야 할지 등등을 물어오곤 하죠.

올해는 세 아이와 맞는 첫 주석이었습니다. / 권정두 기자

그때 저희의 대답은 “길게 생각하라”입니다. ‘부모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조언에 직접 경험한 것까지 더해진 건데요. 아무래도 이제 막 아기가 생긴 입장에선 영유아기만 생각하기 쉬운데, 육아는 그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특히 어린이집·유치원은 아이가 보내고 오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지만, 초등학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2~3살 때보다 초등학교 1~2학년 때 육아휴직 등의 제도 활용이 더 필요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각자의 사정은 다 다르기 때문에 정답이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저희의 작은 사견입니다.

최근엔 이와 관련해 중요한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육아휴직 및 육하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확대를 추진하고 나선 겁니다.

지난 8월 말 정부가 발표한 내년 예산안에 따르면 현재 최대 1년인 유급 육아휴직 기간이 내년 하반기부터 1년 6개월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아울러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도 전반적으로 확대됩니다. 현재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인 신청 가능 자녀 나이는 만 12세 또는 초등학교 6학년 이하로 확대되고,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기간도 최대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나죠.

반가운 소식입니다. 일·가정 양립 측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제도인 육아휴직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이 확대되면, 아이 키우는 여건이 한층 더 나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육아는 비단 영유아기로 끝나지 않는데, 육아에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하면서 일을 병행해나갈 수 있다면 부모들의 삶이 한결 나아질 겁니다. 이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녀 갖기를 선택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고,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여성 경력단절 문제를 해소하는 데에도 역할을 할 것.

다만, 아쉬운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실효성 측면에서인데요. 이번에 추진되고 있는 유급 육아휴직 기간 확대의 대상이 되기 위해선 조건이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육아휴직하는 기간이 3개월 이상이어야 최대 1년 6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죠. 여기에 해당하는 과연 인원이 얼마나 될까요? 정확한 수치를 짚어보긴 어렵지만, 극히 일부일거라 생각됩니다.

우리의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면, 여성의 육아휴직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지만 남성의 육아휴직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가 분명하게 확인되긴 하나,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보긴 어렵습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는 3만7,000여명에 불과했습니다. 부부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는 더더욱 적을 수밖에 없겠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이용자는 2만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6월 기준 국내 전체 사업장 중 이 제도를 이용한 곳은 0.7%에 불과했고요.

이런 상황에서 들려오는 제도 확대 소식은 제 역할을 다하지는 못한 채 오히려 더 큰 역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림의 떡’을 바라보는 허탈함을 키우고, 또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의 자녀 출산에 대한 걱정을 가중시킬 수 있죠. 실효성이 떨어지는 보여주기 식 제도 확대보단 현재 운영 중인 제도부터 잘 정착시키는 것이 더 시급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하고 확대해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에 대해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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