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한정된 시간을 사용하는데 있어 학습에 무게가 쏠려있는 반면 놀 수 있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픽=이주희 기자
우리 아이들은 한정된 시간을 사용하는데 있어 학습에 무게가 쏠려있는 반면 놀 수 있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픽=이주희 기자

시사위크=김두완·권정두·조윤찬 기자  하루는 24시간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평하게 주어진다. 나이가 많다고, 돈이 많다고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시간은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고, 저장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루는 20시간만 쓰고, 다른 날엔 28시간을 쓸 수 없다. 

이러한 고유의 특성으로 인해 시간의 사용은 반드시 기회비용을 남긴다. 어떠한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건, 그 시간에 다른 무언가는 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무척 중요한 일이며,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시간의 사용은 각 개인과 그 사회가 어디에 더 가치를 두고 있는지 뚜렷하게 보여주는 척도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시간 사용에 있어 놀이는 대체로 우선시되기보단 뒤로 밀리는 경향이 짙었다. 이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에서부터 드러난다. ‘공부 다 하고 놀아라’, ‘할 거부터 하고 놀아라’, ‘그만 놀고 공부해라’ 같은 말은 익숙하지만, 반대로 ‘먼저 놀고 공부해라’, ‘공부 그만하고 놀아라’ 같은 말은 어색하게 다가온다.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일 학습과 관련해 보내는 시간은 장시간인 비중이 높은 반면, 놀이과 관련해 보내는 시간은 없거나 적은 쪽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대비를 이룬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일 학습과 관련해 보내는 시간은 장시간인 비중이 높은 반면, 놀이과 관련해 보내는 시간은 없거나 적은 쪽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대비를 이룬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여러 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 아동의 평일 주요 활동시간을 조사한 결과 ‘집 밖에서 친구와 놀거나 보내는 시간’은 △없음 21.4% △1시간 미만 4.2% △1~3시간 미만 30.3% △3~5시간 미만 17% △5시간 이상 27%로 나타났다. ‘취미 및 여가활동’은 △없음 60.6% △1시간 미만 4.1% △1~3시간 미만 21% △3~5시간 미만 7.1% △5시간 이상 7.1%였다.

반면, ‘학원 혹은 과외 시간’은 △없음 19.8% △1시간 미만 0.6% △1~3시간 미만 17% △3~5시간 미만 13.1% △5시간 이상 49.5%였고, 혼자 공부하는 시간은 △없음 10% △1시간 미만 4% △1~3시간 미만 29.4% △3~5시간 미만 11.9% △5시간 이상 44.9%로 조사됐다.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방과 후 활동은 학원과 과외, 집에서 숙제에 비해 친구와 놀기는 훨씬 부족한 응답이 나왔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방과 후 활동은 학원과 과외, 집에서 숙제에 비해 친구와 놀기는 훨씬 부족한 응답이 나왔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평일에 친구와 노는 시간이 없거나 3시간 미만이라는 응답이 55.9%고, 취미 및 여가활동 시간이 없거나 3시간 미만이라는 응답이 85.7%에 달한 것과 달리 학원 혹은 과외 시간과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3시간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62.6%, 56.8%로 집계된 것이다. 즉, 놀이와 관련된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은 쪽의 응답이 많았고, 공부와 관련된 시간은 반대의 양상을 보였다.

방과 후 어떤 활동을 하는지 1순위와 2순위로 고르도록 한 조사에서도 가장 많은 응답이 나온 건 ‘학원·과외(54%)’와 ‘집에서 숙제(35.2%)’였고, ‘친구와 놀기’는 18.6%에 그쳤다.

아동 스스로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 비율도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항상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응답’이 11.8%, ‘가끔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응답은 44.5%였다. 또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로는 ‘학원 또는 과외 수업’이 가장 많은 32.9%의 선택을 받았고 이어 ‘학교’가 23.4%, ‘자기학습’이 21.8%를 차지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5월 발표한 ‘2024년 어린이의 삶과 또래놀이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일주일 중 학교수업을 마친 뒤 친구와 노는 횟수가 △거의 없음 27.9% △주 1~2회 32.1% △주3~4회 22.7% △주 5~6회 9.6% △매일 7.7%로 나타났다. 학교수업을 마친 후 친구와 노는 시간의 경우도 △거의 없음 26.1% △30분 이내 19.4% △1~2시간 이내 32.9% △2~4시간 이내 15.8% △4시간 이상 5.9%로 집계됐다. 학교수업을 마친 후 친구들과 만나 놀 수 없는 이유를 3개까지 선택하도록 한 문항에서는 △학원·학습지·온라인 학습 등을 해야 해서(81.9%) △학교 방과 후 수업을 가야 해서(33.1%)가 압도적인 응답을 받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실시한 ‘2024년 어린이의 삶과 또래놀이 실태조사’에서도 우리 아이들의 부족한 놀이시간 실태와 원인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실시한 ‘2024년 어린이의 삶과 또래놀이 실태조사’에서도 우리 아이들의 부족한 놀이시간 실태와 원인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이처럼 우리 아이들은 한정된 시간을 사용하는데 있어 공부에 무게중심이 크게 쏠려있는 모습이다. 박현선 세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분명한 것은 우리 아동들이 놀이를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고유의 교육, 특히 대학입시 중심의 경쟁적 교육이 변화하지 않는 한 사교육으로 몰리는 아동의 놀 권리는 변화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공교육 영역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수업시간 조정이나 점심시간 확대 등을 통해 놀이시간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져왔고, 현재도 운영 중인 곳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40분 수업 2개를 합쳐서 진행한 뒤 쉬는시간 10분을 이어 붙여 20분의 놀이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부 지역 및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놀이시간 확보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하고, 여러 방안이 시도된 지 10여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보편적인 정책적·제도적 안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여전히 뒤쳐져있는 우리사회의 아동 놀 권리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박현선 교수는 “놀이를 권리로 인식한다는 것은 놀이를 사회적·국가적 책무의 차원에서 하나의 인권적 요소로 이해하고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아이들이 가장 많이 보내는 시간과 공간에 놀이가 내재화돼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어 “예를 들어, 외국에서는 점심시간이 끝나고 거의 1~2시간 이상을 쉬고 노는 게 너무나 당연한 건데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며 “제도권 교육, 즉 학교 안에서 놀이가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해야 비로소 변화가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눈부시고 빠른 발전을 이루며 이제 어엿한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그 사이 우리의 사회상 또한 크고 빠르게 변해왔다. 특히 노동문화 측면에서 보면, 과거엔 많은 시간을 일에 할애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고 야근은 일상인 사회였지만 이제는 ‘워라밸’과 적절한 휴식의 가치가 더 강조되고 있다.

이처럼 어른들의 쉴 시간과 여가시간이 크게 개선된 것과 달리 우리 아이들의 놀이시간은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다. 한정된 시간의 균형을 찾아나가는 것, 아동 놀 권리 보장을 외치는 사회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최우선 과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