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국어사전에서 ‘놀다’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10가지가 넘는 뜻이 나온다. 여기엔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 △직업이나 일정히 하는 일 없이 지내다 △어떤 일을 하다가 일정한 동안을 쉬다 △물자나 시설 따위를 쓰지 않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주색을 일삼아 방탕하게 지내다 등이 포함된다. 순수하게 ‘놀이를 한다’라는 뜻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쉰다는 뜻도, 있고 심지어 방탕하게 지낸다는 아주 부정적인 뜻으로도 쓰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사회에서 놀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쉬는 것, 허송세월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겨지며 등한시돼온 측면이 컸다. 박현선 세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특히 일이나 공부 등을 하지 않거나 쉬는 것을 모두 망라해 놀이로 규정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우리 사회 특유의 높은 교육열과 맞물려 부모들에게는 노는 것이 공부를 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며 놀이의 설자리를 더 좁게 만들어왔다.
박현선 세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시간들도 모두 놀이시간으로 인식하며 충분히 놀고 있다고 하는 반면, 아이들은 놀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항상 하소연을 한다”고 말한다. 조규민 세이브더칠드런 경인지역본부 인천아동권리센터장도 “잘 놀아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입시경쟁 체제 속에 공부가 우선시되고 노는 건 학습을 하지 않는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놀이의 중요성이 차츰 강조되면서 이를 인지하고 있는 부모도 크게 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놀이를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한 건 알지만, 어디까지가 놀이이고 어떻게 놀게 하는 게 바람직한지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부모들이 많다.
서울에서 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한모(32·여성) 씨는 “다큐멘터리나 강연 영상 같은 걸 접하면서 놀이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고,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이 신경쓰고 있다”면서도 “놀 시간을 주고, 장난감 등 놀거리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아이는 심심하다고 떼를 쓴다. 심지어 놀이터를 데려가도 놀아달라고 조르거나 재미없다며 투정을 부린다. 그러다 또 어떨 땐 시답지 않은 장난이나 엉뚱한 말을 하면서 낄낄대고 좋아하기도 한다. 잘 놀게 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너무 어렵다”고 토로한다.
한 자녀를 키우고 있는 정모(38·남성) 씨도 “어린이박물관이나 아이들이 재밌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 등을 어렵게 예약하고 오픈런해서 가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별로 흥미 없어 하거나 신나게 즐겨놓고 나갈 때면 ‘이제 놀고싶다’, ‘언제 놀러가냐’는 말을 할 때면 정말 힘이 쭉 빠진다”고 말한다.
놀이의 범위는 학계나 학자 등에 따라 견해가 나뉘기도 하지만 무목적성과 자발성, 자기주도성이 기본적인 요소로 꼽히는 것은 정설로 여겨진다. 즉, 순수한 놀이가 아닌 다른 목적이 없어야 하며 스스로 자연스럽게 발현하는 것이 놀이의 기본이다.
조규민 센터장은 “아이들이 노는 건 연령, 지역, 아이들 성향마다 다 다를 수 있다”며 “우선은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노는 것으로 느끼는지,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충전과 여가로 느끼는지에 대해서 성인들이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조금 어린 아이들의 경우 관찰해본 것을 바탕으로 놀이의 물꼬를 터주는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거고,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스스로 어떻게 놀지 충분히 결정할 수 있으니 안전 같은 보완적인 영역만 챙겨주면 된다”고 말한다.
박현선 교수는 “놀이라는 건 아이들이 가장 안전하게 자율성과 주도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이 원하는 활동을 할 때 왜 이걸 좋아하는지 생각하면서 아이를 잘 관찰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특정한 개입 없이 아이들과 잘 놀 수 있다. 놀이의 규칙이나 모든 것들을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걸 관찰할 수 있을 거다. 문제는 기다림이다. 아이가 놀지 않는 거라고, 놀지 못하는 거라고 섣불리 판단을 내리면서 부모 등 성인의 개입이 시작된다. 하지만 사람은 본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놀이를 가지고 태어난다.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때까지 조금 참고 기다려주고, 충분한 시간을 주며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김현식 충북교육청 놀이교육지원센터 팀장도 “아이들이 놀이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놀아 준다’기보단 ‘함께 논다’는 차원으로 접근하고, 어른이 놀이의 진행자가 되려 하기보단 놀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들이 놀이를 이끌며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렇다. 놀이는 결코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허송세월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어렵고 복잡한 활동도 아니다. 목표를 세우고 무언가 해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 등 놓아진 환경에서 스스로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놀이의 본질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놀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널리 형성돼있지 않다. 이를 위한 사회적 담론 또한 미미하다. 따라서 진정으로 아동 놀 권리 개선을 추구한다면,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
박현선 교수는 “놀 권리에 대한 인식개선은 놀이의 본질이 무엇인지, 진짜 놀이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사회전반에 교육하는 쪽으로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즉, 온전히 아동에게 놀이의 주도권을 주는 것이 중요하고, 아동의 흥미와 더불어 무목적적인 활동이 돼야 더욱 놀이다워질 수 있는 점 등을 알리는 지속적인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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