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제한 존재하는 국내외 노선에 경쟁 항공사 신규 진입 촉진 위함
해당 조치 완료될 때까지 운임 인상 제한·좌석 공급 축소 금지
운수권·슬롯, 외항사에 분배도 고려… 수요자 없는 경우 독점 운항 가능

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가 22일 오전,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의 주식 63.88%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 입장을 밝혔다. / 뉴시스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이 당초 알려졌던 대로 독과점 노선의 운수권과 슬롯을 일부 반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조건부 승인’으로 확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2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및 주식 취득을 승인하면서 내건 조건은 먼저 독과점 노선으로 꼽히는 뉴욕·로스앤젤레스(LA)‧시애틀·런던·로마·바르셀로나·파리 등 국제선 26개 노선의 시장점유율을 줄이는 조치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을 열고 “국제선 26개 노선, 국내선 14개 노선에서 운임인상 등의 경쟁제한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해당 노선은 (두 항공사)결합 후 점유율이 100%로 독점이 되거나 집중도가 매우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해당 노선에 대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후 슬롯(시간당 최대 이착륙 횟수)‧운수권을 재분배해 독과점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게 공정위 결론이다.

공정위 측에 따르면 미주 노선의 경우 2019년 기준 회사(대한항공)가 운항한 총 13개 노선 중 (아시아나항공과) 중복 노선은 5개다. 이 중 뉴욕·LA·시애틀 노선은 대한항공과 조인트벤처를 체결해 미주 노선 공동운항사 델타항공을 제외하면 대한항공의 완전 독점이며, 샌프란시스코와 호놀룰루 노선은 각각 외항사가 1개씩 경쟁 중이나 점유율이 20% 수준이다.

유럽 노선 총 15개 중 중복 노선은 6개로, 바르셀로나는 결합 후 대한항공의 독점이 되고 파리·런던·로마·프랑크푸르트·이스탄불 노선은 각각 1개씩의 외항사들과 경쟁을 한다. 유럽 노선에서는 바르셀로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운수권이 필요한 항공 비자유화 노선이다. 때문에 슬롯과 운수권의 제약을 고려할 때 다른 항공사의 신규 진입이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시 국제선에 대한 경제 분석 결과 △미주 5개 △유럽 6개 △중국 5개 △일본 1개 △동남아 6개 △대양주 3개 등 총 26개 국제선 노선에서 독과점 현상이 나타나 가격인상률이 높고 운항시간의 차이 등을 고려했을 때 경유편이 유효한 대체수단이 되기 어려운 점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사안이라는 게 공정위 측의 설명이다.

국내선에서는 내륙 노선은 KTX나 SRT 등 고속철도가 대체 수단으로 자리하고 있어 경쟁제한 우려가 낮지만, 제주 노선의 경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그리고 두 항공사의 계열사인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등 총 5개 항공사가 매우 높은 점유율을 차지해 경쟁제한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항공 기업결합과 관련해 “연내에는 심사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EU) 경쟁당국 결정에 앞서 선제적으로 일정을 제시해 속도전을 유도하려는 취지가 담겼다. / 뉴시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시 나타날 수 있는 독과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몇 가지 제시했다. / 뉴시스

공정위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향후 10년 동안 통합 항공사가 보유·사용 중인 슬롯과 운수권에 대해 신규 진입 항공사의 요청이 있을 시 경쟁제한성을 해소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전(분배)하도록 하는 구조적 조치를 부과했다.

조성욱 위원장은 “이번 조치의 목적은 결합 전 아시아나항공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을 유지하거나 경쟁을 더욱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며 “항공여객·운송시장에서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진입하는 항공사가 슬롯과 운수권 등 운항에 필요한 자원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항공사들의 신규 진입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당분간은 구조적 조치가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신규 진입이 경쟁제한성을 해소하는 수준까지 일어나기 전까지는 소비자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별도의 조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 일환으로 신규 진입이 일어나는 시점까지는 운임인상 제한, 공급축소 금지, 서비스품질 저하 금지 등을 함께 주문했다.

운수권 분배 기준은 특정 독과점 노선에서 양사 통합점유율이 50% 이하로 축소될 때까지 슬롯과 운수권을 재분배한다. 결합 전 양사 중 한 곳의 점유율이 이미 50%가 넘는 노선의 경우 그 수준을 최대 기준으로 허용한다.

운임인상은 향후 10년간 경쟁제한성 해소 조치가 마무리되기까지 ‘물가상승률’을 기준으로 해 그 이상의 운임 인상을 제한한다. 항공 마일리지도 2019년 기준 제도보다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지 못 하도록 했다. 양사 합병 시 마일리지 통합 방안도 공정위의 승인을 얻고 시행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이러한 공정위의 조치에 통합 항공사의 향후 경쟁력 저하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양사의 중복 국제선은 총 65개로, 이 중 40% 수준에 달하는 26개 노선을 재분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주‧유럽 등 장거리 노선에 국내 저비용항공사(LCC)가 신규 진입하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공정위는 통합 항공사가 독과점하고 있는 26개 노선에 대해 외항사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는 국적에 무관하게 분배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타얼라이언스 소속인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과 합병 시 소속 항공동맹을 탈퇴하고 대한항공이 속한 스카이팀으로 이적할 것으로 보인다. / 뉴시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 그러나 향후 10년간 독과점으로 인한 경쟁제한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 뉴시스

고병희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관(국장)은 “국내 LCC들이 장거리 기재를 갖고 있지 않아 장거리 노선 진입에 애로가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슬롯이나 운수권을 배분할 때 국내 LCC에만 분배하는 것은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며 “그렇게 되면 우리가 외항사를 차별하는 조치로 보일 수 있고, 외국 당국에서는 외국 항공사에, 국적 항공사에만 슬롯·운수권을 배분하는 조치가 또 나올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각국이 그렇게 되면 결합 당사 회사 입장에서는 이중적인 조치들을 모두 이행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며 “그래서 국내 항공사든 외국 항공사든 그것을 구분을 두지 않고 신청 진입 항공사가 있을 경우에는 슬롯·운수권을 배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향후 10년 동안 타 항공사에서 특정 노선에 대해 운수권과 슬롯 분배를 요청하지 않는다면 통합 항공사의 독점권을 인정해주겠다는 부가 조항도 덧붙였다.

고병희 정책관은 “10년이라는 기간은 항공사들이 충분히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고, 10년간 특정 노선에 대해 진입(을 요청하는) 항공사가 없는 경우에는 시장이 그렇게 판단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경우엔) 당사 회사(통합 항공사)가 벽지노선처럼 손해를 보면서도 띄운다든지, 띄울 수밖에 없는 그런 것도 있지 않습니까”라며 “시장의 자율적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우리 공정위가 두 회사의 기업결합을 제한적으로나마 승인을 했지만 외국 경쟁당국의 심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싱가포르·베트남·대만·터키·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뉴질랜드 등 8개국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을 승인했다. 하지만 인수합병 필수 신고국가인 미국·유럽연합(EU)·일본·중국 4개국과 임의 신고국 영국·호주까지 총 6개국 심사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공정위는 해외 경쟁당국이 이번 공정위 시정조치와 다른 판단을 내릴 경우 다시 전원회의를 열어 조치 내용을 보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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