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외부의 위협에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다는 개념에서 ‘자주국방’은 국가가 추구해야 할 지향점임엔 틀림없다. 정부도 그간 이러한 인식하에 자주국방 실현을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문제는 ‘자주국방론’이 대한민국 현실에선 복잡한 정치적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외교·안보의 근간과 맞닿아 있다는 점은 진영 간 이해 충돌의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강력한 자주국방의 길’을 두고 정치권이 소란스러운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강력한 자주국방의 길을 열겠다”고 강조했다. 인구 감소로 인해 병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하면서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군대는 장병 병력수에 의존하는 인해전술식 과거형 군대가 아니라, 유무인 복합체계로 무장한 유능하고 전문화된 스마트 정예 강군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다시는 침략받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 대통령은 “의존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가겠다”고도 했다. 강력한 국방력을 토대로 ‘자주국방’ 실현의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 대통령은 “중요한 건 이런 군사력, 국방력, 국력을 가지고도 외국 군대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일각의 굴종적 사고”라며 “강력한 자율적 자주국방이 현시기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자주국방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 단순히 이번뿐만은 아니다. 앞서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방위산업 육성 및 자체 기술을 기반으로 한 무기 개발 등을 언급하며 자주국방 역량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이러한 내용은 ‘스마트강군’이라는 이름으로 공약에 담겼다. 이번 이 대통령의 메시지도 그간 이 대통령이 가져온 정책적 지향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한미동맹 훼손’ 우려도
그럼에도 이번 메시지가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킨 데는 해당 발언이 사실상 미국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탓이다. 당장 유엔(UN)총회 참석차 미국 방문을 하루 앞두고 나온 메시지라는 점과, 관세 관련 세부 협상이 난항을 겪는 등 미국과 풀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는 점 등이 근거다. 이 대통령이 최근 공개된 외신과 인터뷰에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으면 탄핵당했을 것”이라거나, “금융위기에 직면할 것” 등 발언을 내놓은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미국의 압박이 거센 상황에서 이 대통령으로선 ‘여론전’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국내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협상 국면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중이 담겼을 것이란 분석이다. 국립외교원장 출신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이를 일종의 ‘자신감’이라고도 표현한다. 김 의원은 2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관세 협상에서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며 “‘비합리적인 건 국민한테 호소해야 한다’는 약간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주한미군 역할 변경 등을 포괄하는 ‘동맹 현대화’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화’를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선 이 대통령의 ‘자주국방’ 발언은 결국 한미 간 안보 협상에 쉽게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강경한 태도가 자칫 한미동맹의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당장 야권이 “한미동맹을 흔드는 망동”이라고 지적한 이유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자’고 하는 것이 자주국방이지 거기에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완전히 폄훼하는 그런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 대통령의 인식 체계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이날 페이스북에 “자주국방은 한미동맹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여야 한다”며 “이재명 대통령의 자주국방론은 주한미군 불필요론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