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리는 영상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리는 영상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와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키던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대통령이 대선후보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대선 정국이 ‘문재인 대 윤석열’ 전면전 양상으로 바뀌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오전 참모회의에서 윤 후보를 향해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에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데도 못 본 척 했다는 말인가”라며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된다”고 밝혔다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불법으로 본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윤 후보 비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같은날 공개된 AP·교도·타스·신화·로이터·EFE·AFP통신, 연합뉴스 등 아시아·태평양뉴스통신사기구(OANA) 소속 국내·외 8개 통신사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도 “아무리 선거 시기라 하더라도 정치권에서 분열과 갈등을 부추겨서는 통합의 정치로 갈 수 없다”며 윤 후보를 겨냥한 것 같은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또한 해당 인터뷰에서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 중 탄핵 후폭풍과 퇴임 후의 비극적인 일을 겪고서도 우리 정치문화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가 이뤄진 것은 윤 후보의 인터뷰 게재 날짜보다 앞섰으나, 문 대통령이 야권의 공세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음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이 정치 현안에 직접 분노를 표출한 것은 지난 2018년 1월 18일 이후 4년여 만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자 “정치보복을 운운한 데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이 전 대통령이 마치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을 한 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분노를 표한 이유는 윤 후보의 지난 9일자 ‘중앙일보’ 인터뷰 발언이었다. 윤 후보는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고 강조했고, ‘윤 후보가 집권하면 검찰공화국이 된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는 “그건 여권의 프레임이다.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나”라고 발언했다. 

문 대통령이 윤 후보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며 ‘살아있는 권력에 개의치 말고 엄정하게 비리를 척결해 달라’고 주문했으나, 윤 후보는 검찰총장직을 내려놓고 야당의 대선후보가 됐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윤 후보가 현 정권을 적폐로 돌린 것에 분노를 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 했단 말인가”라고 물은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해당 인터뷰를 확인한 후 심각함을 인지하고, 이날 해당 발언을 메모지에 적어 왔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같은날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발표된 문장은 대통령께서 직접 쓰신 것이다. 메모지에 써 오셔서 저희들에게 준 것이기 때문에 토론이 있었다거나 다른 의견 교환이 있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청와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문 대통령의 사과 요구에 대한 추가적인 배경 설명을 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여야 후보를 막론하고 내가 당선되면 대대적으로 정치 보복하겠다고 공언한 후보는 처음 본다”며 “본인이 그렇게 검찰총장직을 던질 정도로 검찰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하신 분이 대통령도 되기 전에 검찰 수사를 하라, 마라라고 하는 것은 자기부정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는 “오미크론 확산 때문에 사실 모든 행정력의 80~90%를 여기에다 지금 쏟아 붓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렇게 대통령을 흔들고 선거판에 불러내서 소재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저는 대단히 유감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게 일종의 정치 적폐고, 구태”라고 지적했다.

또 이 고위관계자는 “그분들이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겠지만, 이게 선거 전략 차원에서 발언한 것이라면 굉장히 저는 저열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만약에 (윤 후보의) 소신이라면 굉장히 위험하다, 최소한 민주주의자라면 이런 발언은 하면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개입이라고 반발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불법이 드러나는 사안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공정하게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론적 의견을 피력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를 향해 사과를 요구한 것은 명백한 선거 개입 시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고위관계자는 “윤 후보가 대통령을 겨냥해서 한 발언에 대해서 대통령이 반론권을 행사한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 선거 개입이라고 하면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으로 죽은 듯이 직무 정지 상태로 있어야 되냐”며 “그렇게 얘기하려면 (윤 후보가) 그런 발언을 안 했어야 했다. 선거에 대통령을 끌어들이지 않을 노력은 야당도 있어야 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윤 후보의 인터뷰는 문 대통령이 대선 국면에 뛰어들게 만든 원인이 됐다. 지난 10일 기준으로 대선이 27일 남은 상황에서 청와대가 야당 대선 후보를 직접 비판한 것은 대선 정국에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 후보의 지지율이 박빙이기 때문에, 문 대통령의 비판은 윤 후보 지지율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야권 내에서도 윤 후보의 발언이 과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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