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세종과학기지 이성수 제38차 월동연구대 기계설비 대원 인터뷰
월동대 시설유지반, 기계설비 운영 및 정비 업무 담당
얼음의 땅 ‘남극’은 흔히 ‘미지의 대륙’이라 불린다. 인류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끝’ 남극에서 지구의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남극세종과학기지의 월동연구대와 하계연구대가 그들이다. 거대한 빙하, 바다를 떠도는 유빙,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블리자드(눈보라). 어떤 위험에도 그들은 남극을 지킨다. 우리는 이들을 ‘국가대표 극지인’라 부르기로 했다. 시사위크 남극특별취재팀이 남극세종과학기지를 찾아 그들을 만나봤다. [남극특별취재팀=김두완 기자, 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남극=남극특별취재팀 남극은 자급자족 마인드가 필수다. 극한이란 환경과 제한된 물자로 항상 어려움이 겪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극을 지키는 대원들에겐 대수롭지 않다. 그들은 긍정적인 생각과 적극적인 자세, 그리고 놀라운 재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
남극세종과학기지(이하 세종기지) 대원들 가운데 이성수 기계설비 대원은 ‘맥가이버’를 연상케 하는 주인공이다. 맥가이버는 1985년부터 1992년까지 방영되며 세계적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다. 주인공인 맥가이버는 천재적인 임기응변과 기지로 여러 물건을 제작, 수리하며 첩보 임무를 수행한다.
마치 맥가이버처럼 이성수 대원은 세종기지의 한정된 자원, 도구를 가지고 여러 장비를 제작·관리한다. 세종기지 내 시설 중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는 수준이다. 남극특별취재팀은 뚝딱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고 수리하는 ‘남극의 맥가이버’ 이성수 대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기지에서 필요하면 뭐든 만들어야죠”
“남극에선 재료가 없어도 어떻게든 만들어 낸다. 깎고, 붙이고, 안되면 근처 다른 나라 기지에 빌려서라도 해결한다.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야 연구자들이 연구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다.”
세종기지 제38차 월동연구대 이성수 대원의 말이다. 그는 다재다능하다. 담당 업무인 기계설비 분야 관련 지식과 기술은 물론 목공까지 섭렵한 능력자다. 때문에 그는 경험하지 못한 기계가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기계마다 부품과 공구가 다르다 할지라도 ‘자르고 조이고’를 반복하며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법을 적용하며 문제를 푼다.
사실 이성수 대원은 ‘남극인’이란 별칭이 더 자연스러운 대원이다. 그는 올해가 남극에서 다섯 번째 월동이기 때문이다. 2007년 세종기지 제20차 월동연구대를 처음 시작으로 △세종기지 제22차 월동연구대(2009년) △세종기지 제24차 월동연구대(2011년) △장보고과학기지 제1차 월동연구대(2013년) △세종기지 제38차 월동연구대(2025년, 현재) 활동을 했다.
또한 월동대 활동 이외 기간에도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에 큰 기계설비들이 설치될 때는 설치 작업에 참여해 남극활동을 했다. 이성수 대원은 남극에서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를 모두 경험했다. 그래서 그가 들려주는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 이야기는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두 과학기지는 위치적으로 차이가 있다. 세종기지는 서남극 남쉐틀랜드 군도(South Shetland Islands) 킹조지섬에 위치해 있다. 위도 62도 13분, 경도는 58도 47도로 남극의 가장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평면 세계지도 기준으로 세종기지는 남아메리카 대륙 칠레의 남쪽에서 가깝다.
반면 장보고기지는 동남극 북빅토리아랜드(Northern Victoria Land) 테라노바만에 위치해 있다. 위도와 경도는 74도 37분, 동경은 164도 12분으로 세종기지보다 남극점에 약 1,400km 가깝다. 지도상으로 장보고기지는 오세아니아 대륙의 호주와 뉴질랜드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위치적 차이는 연구대상의 차이를 만든다. 세종기지에서 바다를 볼 때 장보고기지에서는 우주를 본다는 말이 있다. 해안에 인접한 세종기지는 해양 연구가 활발하며, 남극점에 가까운 장보고기지는 깨끗한 하늘과 해가 뜨지 않는 극야 현상으로 우주과학 연구가 유리하다.
이성수 대원은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의 가장 큰 차이는 밤 길이의 차이로 세종은 낮만 있고 장보고는 밤만 있을 정도로 느낀다”며 “하지만 이 차이 덕분에 세종기지선 다양한 활동을, 장보고는 오로라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 남극 세종기지 기계설비 대원의 숙명
세종기지에서의 생활은 곧 한정된 자원과의 싸움이다. 남극은 11월부터 3월까지 ‘여름’이 아니면 접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종기지의 시설 관리는 연구 활동 능력 유지뿐만 아니라 대원들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이성수 대원과 같은 극지 활동 베테랑이 세종기지 기계설비 대원으로 투입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실제로 ‘극지연구소’가 제공한 ‘남극과학기지 월동대원 직무기술서’에 따르면 기계설비 대원은 해당 분야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적이 있는 경력자만 지원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관리기능사, 공조냉동기계기능사, 배관기능사, 용접기능사 등 관련자격증 2개 이상을 소지하는 것도 필수조건이다.
세종기지에서 기계설비 대원 맡은 임무는 △배관설비 운영 및 정비 △보일러 운영 및 정비 △냉장내동기 운영 및 정비 △담수화기 운영 및 정비 △공조기 운영 및 정비 △고압가스 취급 및 안전관리 △기지 시설 및 기자재 관리 등 매우 다양하다. 사실상 세종기지의 모든 장비 관리를 이성수 대원이 맡고 있는 셈이다.
물론 기계설비 대원이라고 해서 기지 시설 관리만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기지 생활 및 운영과 관련 공동 업무와 연구활동 지원 업무도 담당한다. 하계대 연구원들이 위버 반도, 마리안소만, 포터소만 등 지역을 이동할 때 조디악보트 운행 준비, 연구 지역 내 대피소 관리 지원도 이성수 대원의 임무 중 하나다.
해외 기지와의 물자 교류에 있어서도 이성수 대원의 역할은 빛났다. 지난해 12월 28일, 중국 장성기지에 세종기지의 물자를 빌려주는 작업이 진행됐다. 작업은 커다란 바지선 위에 포크레인, 지게차 등 주요 장비를 실어 옮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여기서 이성수 대원은 장비 및 바지선 상태 점검, 조디악보트와 바지선 연결 등을 총괄했다.
이성수 대원은 “극지 환경이 결코 쉬운 곳은 아니지만 잠시 근심,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며 “젊은 연구원, 대원들과 새롭게 어울리는 기회를 얻은 것도 너무나 즐겁다”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극지 생활의 즐거움만 생각하고 월동대원를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고립되고 고된 환경에서 얼마나 내가 잘 버틸 수 있는지의 마음의 준비, 한정된 자원과 환경에서 모든 일을 내가 책임지기 위한 능력을 갖춘 다음 지원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 김두완 기자, 박설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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