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장재원 전자통신대원 인터뷰

얼음의 땅 ‘남극’은 흔히 ‘미지의 대륙’이라 불린다. 인류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끝’ 남극에서 지구의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남극세종과학기지의 월동연구대와 하계연구대가 그들이다. 거대한 빙하, 바다를 떠도는 유빙,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블리자드(눈보라). 어떤 위험에도 그들은 남극을 지킨다. 우리는 이들을 ‘국가대표 극지인’라 부르기로 했다. 시사위크 남극특별취재팀이 남극세종과학기지를 찾아 그들을 만나봤다. [남극특별취재팀=김두완 기자, 박설민 기자]

‘남극 베테랑’인 제 38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에서 전자통신대원으로 근무하는 장재원 대원은 누구보다 순수한 열정으로 남극을 사랑한다. 그것이 한 번도 하기 힘든 남극 생활을 4번이나 가능케 한 원동력이다./ 사진=남극특별취재팀
‘남극 베테랑’인 제 38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에서 전자통신대원으로 근무하는 장재원 대원은 누구보다 순수한 열정으로 남극을 사랑한다. 그것이 한 번도 하기 힘든 남극 생활을 4번이나 가능케 한 원동력이다./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시사위크|남극=남극특별취재팀  한반도에서 1만7,240km 떨어진 ‘남극세종과학기지’. 이곳을 월동연구대는 1년 간 지킨다. 18명으로 구성된 월동대원들은 나이도, 소속도, 전공도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남극’을 사랑한다는 열정만큼은 모두 동일한 사람들이다.

그중 ‘남극 베테랑’인 제 38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 장재원 대원은 누구보다 순수한 열정으로 남극을 사랑한다. 그것이 고된 남극 생활을 4번이나 가능케 한 원동력이다. ‘시사위크 남극특별취재팀’은 세종기지 월동대에서 전자통신 임무를 담당하는 ‘남극의 어린왕자’ 장재원 대원의 하루를 함께 따라가봤다.

◇ 세상과 남극을 연결하는 ‘통신대원’

2024년 12월 28일, 오전 7시부터 세종기지 월동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종기지 인근에 위치한 중국의 ‘남극장성기지’에서 세종기지 방문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장성기지의 연구원들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 관계자들까지 방문했다. 말 그대로 ‘대형 남극 국제행사’다.

서남극 킹조지섬 바톤반도에 위치한 세종기지는 국제적으로 가장 우수한 시설을 갖췄다. 때문에 칠레, 아르헨티나, 러시아, 중국 등 주변 해외 연구기지 인원들이 자주 견학한다. 특히 세종기지에서 조디악보트로 약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중국 장성기지는 가장 자주 교류하는 해외기지 중 한 곳이다.

2024년 12월 28일, 세종기지 인근에 위치한 중국의 ‘남극장성기지’에서 세종기지를 방문했다./ 사진=남극특별취재팀
2024년 12월 28일, 세종기지 인근에 위치한 중국의 ‘남극장성기지’에서 세종기지를 방문했다./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이번엔 장성기지의 연구원들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 관계자들까지 방문했다. 말 그대로 ‘대형 남극 국제행사’다./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이번엔 장성기지의 연구원들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 관계자들까지 방문했다. 말 그대로 ‘대형 남극 국제행사’다./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손님들의 방문에 장재원 대원의 업무도 바빠졌다. 장성기지 측 인원들이 세종기지로 이동하는 동안 장재원 대원은 쉬지 않고 무전으로 교신했다. 세종기지 부둣가, 해안, 파도 상황을 실시간 브리핑하기 위함이다.

하필 방문 당일, 남극의 날씨는 좋지 않았다. 때문에 장재원 대원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기상대원의 안내를 받아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남극 날씨에 맞춰 선박 관제를 진행했다. 장재원 대원의 관제와 김원준 월동대장의 지휘에 맞춰 월동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장성기지 조디악보트 정박을 위한 조치를 취했다.

안개와 파도를 뚫고 장성기지 인원들이 무사히 세종기지 부두에 도착했다. 마침내 장재원 대원의 얼굴에도 긴장이 풀렸다. 약 1시간의 임무지만 남극 통신대원들에게 이는 긴장되는 작업이다. 자칫 잘못된 통신 무전은 남극에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재원 대원은 “통신대원은 방송, 인터넷 등 통신 분야와 함께 기지 내 거의 모든 관제 역할을 한다”며 “이런 기지 운영과 안전을 통합할 수 있는 임무를 맡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시간도 투자를 많이 해야 하지만 그만큼 보람과 자부심도 크다”고 말했다.

통신대원은 다른 월동대원과 달리 항시 기지 내 통신실에서 대기해야 한다.  기지 방문요청이나 주변 구조 요청을 놓쳐선 안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남극의 통신대원들은 ‘새장 속에 갇힌 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통신대원은 다른 월동대원과 달리 항시 기지 내 통신실에서 대기해야 한다.  기지 방문요청이나 주변 구조 요청을 놓쳐선 안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남극의 통신대원들은 ‘새장 속에 갇힌 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 화장실 갈 시간 ‘30초’, 통신실에서 떠날 수 없는 이유

이처럼 세종기지의 통신대원은 모든 통신내용을 관제하고 상황을 유지해야 한다. 중국 장성기지와의 무전도 이 임무의 일환이었다. 특히 기지 방문요청이나 주변 구조 요청을 놓쳐선 안된다. 때문에 통신대원은 다른 월동대원과 달리 항시 기지 내 통신실에서 대기해야 한다.

장재원 대원은 “남극의 통신대원은 하나의 통신 신호라도 놓쳐선 안되기 때문에 기지에 정말 바쁜 일이 생겨도 통신실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다”며 “세종기지는 그나마 여유가 있지만 헬기를 운용하는 장보고 기지에서는 화장실도 함부로 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통신대원의 일이 외부와의 무전 통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선통신과 유선통신, 위성통신 등 기지 내 모든 통신망과 시설 관리가 주요 임무다. 뿐만 아니라 기지 내 컴퓨터와 통신 장비에 설치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도 관리해야 한다. 즉, 주변 해외기지부터 한국에 위치한 극지연구소에 이르기까지 세종기지가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은 장재원 대원의 손에 달린 셈이다.

통신대원은 무선통신장비나 안테나 등 외부에 있는 장비를 고칠 때나 월동대 업무가 매우 바쁠 때만 잠시 밖에서 업무 활동을 할 수 있다./ 사진=남극특별취재팀
통신대원은 무선통신장비나 안테나 등 외부에 있는 장비를 고칠 때나 월동대 업무가 매우 바쁠 때만 잠시 밖에서 업무 활동을 할 수 있다./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장재원 대원은 “통신대원은 하루 종일 통신실에만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라며 “그나마 무선통신장비나 안테나 등 외부에 있는 장비를 고칠 때나 월동대 업무가 매우 바쁠 때만 잠시 밖에서 업무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극지 통신대원들의 노력은 극한의 남극 환경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24년 1월 25일 남극 아문젠해역을 항해하던 ‘아라온호’는 우루과이 선박의 응급환자를 구조하기도 했다. 이는 칠레 해난구조센터로부터 온 긴급 지원 요청 덕분이다.

장재원 대원은 “이 때문에 월동대 통신대원은 ‘새장 속에 갇힌 새’라는 별명도 있다”며 “특히 헬기 추적 시스템과 기지 연락을 쉴 틈 없이 감시해야하는 하계 때는 30초 안에 화장실도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 같은 통신대원들의 노고는 연구활동뿐만 아니라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 확보의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며 “특히 인프라와 자원이 부족한 극한의 남극 환경에서는 단 하나의 통신 신호도 놓쳐선 안되기 때문에 통신대원은 불평할 틈도 없다”고 말했다.

장재원 대원은 월동 생활을 3번이나 한 ‘남극 생활 베테랑’이기도 하다. 지난 2014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3번 장보고 기지에서 월동을 경험했다. 이번 세종기지까지 합하면 무려 4번의 월동 생활을 하는 것이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장재원 대원은 월동 생활을 3번이나 한 ‘남극 생활 베테랑’이기도 하다. 지난 2014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3번 장보고 기지에서 월동을 경험했다. 이번 세종기지까지 합하면 무려 4번의 월동 생활을 하는 것이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 4번의 남극행, 소설작가를 꿈꾸는 ‘남극의 어린왕자’

장재원 대원은 월동 생활을 3번이나 한 ‘남극 생활 베테랑’이기도 하다. 지난 2014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3번 장보고 기지에서 월동을 경험했다. 이번 세종기지까지 합하면 무려 4번의 월동 생활을 하는 것이다. 때문에 처음 남극에 온 젊은 월동대원들에겐 든든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선배 역할도 맡고 있다.

물론 장재원 대원에게도 ‘처음’은 있었다. 과거 전기·공사 분야에서 일을 했다. 그러던 도중 새로운 배움이 필요하다고 느껴 정보통신(IT)기술 공부를 하게 됐다. 그렇게 인터넷·IT분야에서 일을 하던 중 극지연구소의 ‘월동대 모집’ 소식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것이 장재원 대원이 남극이라는 곳을 처음 방문하게 된 계기다.

장재원 대원은 “직장에서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길에 장보고 기지 월동대원 모집 광고를 지하철에서 보게 됐다”며 “늘상 직장과 업무에 치어 살던 내가 혹시 남극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이 마음속에 작은 불길을 일으켰고 눈을 떠보니 남극행이 결정된 장보고 기지의 대원이 돼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제 4번째 남극 생활을 보내고 있는 장재원 대원은 또 다른 작은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바로 ‘소설 작가’다. 어린 시절부터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것과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도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다. 때문에 자신이 쓰는 소설의 제목에도 어린왕자가 들어간다고 했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공상과학(SF)’이다. 관련 소설 작품과 영화, 게임 등의 시나리오는 모두 찾아봤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남극에 오기 전까지 아마추어 작가로 웹사이트에서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다. 소설에는 장재원 대원이 경험한 남극 장보고 기지가 등장하기도 한다. 

장재원 대원은 “지금은 웹소설 작가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고 이번 세종기지 생활 동안 소설 작품을 써보고자 한국에서 많은 자료도 준비해왔다”며 “남극 생활을 경험한 세종기지와 장보고 기지를 배경으로 한 SF소설도 조금씩 써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월동이 끝나면 다시 한 번 남극에 올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늘 남극이 그리울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며 “남극은 한 번쯤 인생에서 도전해볼 만한, 그리고 경험해볼 만한 곳으로, 이런 도전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 박설민 기자, 김두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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