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남극=남극특별취재팀  남극엔 '보이지 않는 손'이 필요하다. 극한과 고립, 한정된 물자는 ‘남극세종과학기지’를 지키는 월동연구대원들에겐 매순간이 도전이다. 때문에 세종기지 내에서는 대원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대원들의 보이지 않는 숨은 노력이 세종기지를 지키는 힘이 된다. 

특히 세종기지에서 전기, 연료 등의 에너지원 관리는 무엇보다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 중요한 임무는 ‘발전대원’이 수행한다. 기지 내 발전기 운영부터 예비 전력시설 관리, 경유, 휘발유 등 유류 관리 업무까지 에너지·발전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담당한다.

올해 제38차 월동연구대에서 이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 대원은 양지훈 발전대원이다. 시사위크 남극특별취재팀은 양지훈 대원을 만나 하루 1분 1초도 여유가 없는 발전대원의 하루 일과를 체험해 봤다.

◇ “전기부터 냉각수까지”… ‘버릴 것 없는’ 남극의 발전기

오전 8시 30분, 세종기지 유지반 아침 회의를 마친 대원들은 각각 자신의 업무 현장으로 이동한다. 유지반 대원들은 △기계 설비 △중장비 △발전 △전기 △해양 선박 등을 관리 및 운영하므로 대부분 야외 현장으로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발전 업무를 담당하는 양지훈 대원은 기지 내 가장 깊숙이 위치한 발전장비가 있는 실내에서 업무를 본다. 실내란 장점이 있지만 거대한 발전 소음 때문에 귀마개를 항상 착용하고 업무를 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거대한 공장 혹은 창고처럼 보이는 발전소엔 총 3대의 발전기가 자리하고 있다. 1대당 약 275KW의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이는 약 100~110세대의 가정이 동시에 1시간 동안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발전대원은 발전기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다. 전날 밤 구동해 따뜻한 상태에서 △엔진오일 상태 △연료 상태 △적정 온도 △압력 등을 점검한다. 3대의 발전기는 한 번에 1대씩만 구동한다. 이상이 없다는 전제하에 1대를 10일마다 교체하며 한 달을 보낸다. 발전기에 과부하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양지훈 대원은 “발전기 구동 매뉴얼에 따르면 한 번 운영 시 250시간 정도를 사용한 후 휴식해야 한다”며 “기지 운영 상황을 고려하면 이를 정확히 맞추기 어려워 대략 240시간마다 휴식 및 정비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세종기지의 전기 공급은 단순히 ‘유류 발전’ 하나의 방식만 사용하지 않는다. 발전기에서 나온 열을 이용한 일종의 ‘열병합 발전’도 함께 활용한다. 가동한 발전기는 엔진이 매우 뜨거워지기 때문에 이를 식히기 위해선 냉각수를 사용해야 한다. 이때 온도가 올라간 냉각수에서 뜨거운 공기가 만들어지고 이는 열교환기로 이동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난방과 온수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구조다.

양지훈 대원은 “고립된 남극에 위치한 세종기지는 한정된 경유, 연료를 가지고 자가발전을 해야만 한다”며 “따라서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발전기의 냉각수에서 발생한 열을 회수해 온수, 난방용으로 사용하는 열병합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 남극의 특수한 환경, ‘기름’도 다르다

발전기뿐만 아니라 유류 관리도 발전 대원의 주요 임무다. 세종기지에는 총 6개의 유류탱크가 있다. 개당 용량은 약 150톤으로 월동대원들이 1년간 사용할 기름을 여기에 저장한다. 탱크의 기름 공급은 2년에 한 번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남극에서 사용하는 기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경유 △등유 △휘발유와는 조금 다르다. ‘극지유(極地油)’라 불리는 특수 기름을 사용한다. 일반적인 디젤에 파라핀을 일정 비율 섞은 것이다. 파라핀은 일종의 왁스 성분이다. 저온이 되면 허옇게 굳는다. 하지만 매우 추운 날씨만 아니라면 오히려 연료의 윤활 성능을 높여주고 기름이 얼지 않도록 도와준다.

남극은 여름엔 영상 8도까지 기온이 올라가 생각보다 따뜻하다. 그래서 세종기지에선 극지유 사용이 용이하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그야말로 ‘극지’로, 영하 60도의 온도까지 순식간에 내려간다. 비교적 따뜻한 세종기지조차도 영하 20~30도까지 떨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남극의 추운 날씨에 파라핀이 굳는 경우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특히 발전기에 파라핀 덩어리가 엉겨붙는 경우 고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발전대원을 비롯한 월동대원들은 주기적으로 유류탱크 내부의 파라핀 찌꺼기들을 청소한다. 청소는 거대한 유류탱크 내부로 대원들이 직접 들어가서 진행한다. 독한 기름 냄새와 방호복 때문에 매우 힘든 작업이다.

양지훈 대원은 “세종기지의 발전기는 일반적인 디젤이 아니라 파라핀 함량이 높은 극지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고장이 잦은 것으로 생각된다”며 “이를 대비하기 위해 필터 교체 주기 변경 등 대책을 강구 해 다음 차수 월동대가 좀 더 수월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모든 월동대원들과 마찬가지로 발전대원도 자신의 임무 외 기지 업무를 함께 한다. 양지훈 대원의 경우 하계대 연구지원, 해양 업무 지원 등 다양한 업무에 참여한다. 시간이 남을 땐 연구대원들의 임무를 지원하기도 한다.

양지훈 대원은 “쉬는 날 연구팀을 지원해 남극의 만년설과 빙하, 유빙을 보는 것은 일이 아니라 또다른 즐거움”이라며 “특히 펭귄마을에서 본 아기 펭귄과 이를 노리는 스쿠아들을 보면서 자연 환경도 치열한 인간의 삶과 유사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발전대원으로서의 역할부터 연구지원 활동까지 양지훈 대원은 월동대에서 없어선 안 될 인재다. 하지만 이곳에 온 것은 ‘우연’이었다. 한국에서 전기안전관리사로 일하던 당시, 같이 일했던 지인 중 한 명이 남극 월동 경험이 있었던 것. 이에 ‘한번 도전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에 덜컥 남극행을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양지훈 대원은 “국내서 일하던 곳에서 발전기 보수일을 가르쳐주던 선임이 남극의 전기대원이나 발전대원 지원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며 “그렇게 잊혀져 가던 도중 지하철에서 세종기지 발전대원 공고를 봤고,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지원할 때, 타지에 가본 적도 없는 아들이 갑자기 남극에 간다고 하자 부모님께서 걱정과 반대가 컸다”며 “하지만 결국 허락하셨고 지금 굉장히 자랑스러워 하신다”고 덧붙였다.

/ 박설민 기자, 김두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