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남극=김두완·박설민 기자 남극은 인류에게 ‘딜레마’다. 지구상에서 가장 순수한 자연이 남아 있는 동시에 기후변화 연구를 위해 꼭 필요한 공간이지만, 인간의 발길이 닿는 순간 훼손의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결국 환경 보전이란 노력은 역설적으로 균열을 자아낸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이기심이란 촉매를 만나 환경 파괴라는 씨앗을 뿌린다.
이제 남극은 눈과 얼음으로만 가득하던 자연환경에서, 연구와 보존, 탐험과 파괴가 동시에 얽히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환경 보전과 탐험 사이에서 생긴 균열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인간 활동과 기후변화가 교차하며 만들어낸 상징적 결과이며, 남극 생태계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다.
◇ 남극 불청객… 외래종의 위협
남극은 극한의 기후와 고립된 환경 덕분에 독자적인 생태계를 유지해 왔다. 1959년 체결된 남극조약도 평화적 목적과 과학 연구만을 허용하며, 방문과 활동을 엄격히 제한해 왔다. 그럼에도 균열은 발생한다. 불청객처럼 찾아든 외래종 때문이다.
최근 기후변화로 남극을 둘러싸며 차가운 장벽 역할을 해온 남극순환류(Antarctic Circumpolar Current, ACC)가 약화됐다. 빙하가 녹아 해수의 염분과 온도가 달라지자, 북쪽의 따뜻한 물이 남극 깊숙이 흘러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화는 남극 해양 생태계를 뒤흔들며, 외래종 유입의 길을 열고 있다. 다시 말해 기후변화가 남극의 문을 열어버린 셈이다.
인간의 활동도 외래종 유입 위험을 키운다. 연구 장비와 보급품, 의복에 묻은 미세한 씨앗이나 곤충 알조차 생태계에 치명적인 균열을 만들 수 있다. 특히 관광객이 무심코 밟고 옮겨온 흙과 먼지도 외래종 유입 경로다. 남극의 고립된 환경은 외부 생물이 들어오는 순간 경쟁자가 없는 ‘빈 생태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작은 침입도 순식간에 퍼져 나갈 수 있다.
실제로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남극 대륙과 인근 섬에서 확인된 외래종 침입은 3,000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 모나쉬대학교 생물학과와 라트로브대학교 환경 및 유전학과 공동연구팀이 2021년 3월부터 2023년 1월까지 남극 대륙과 남극해 섬에서 발견된 외래종은 총 36개 서식지에서 3,066건이 조사됐다. 이 중 현존하는 외래종은 약 2,390건이며, 멸종되거나 생존 상태가 불확실한 것은 676건이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외래식물종으로, 총 1,555건을 차지했다. 뒤를 이어 △곤충류 510건 △포유류 397건 △거미강 171건 △조류 148건 △톡토기류 99건 △곰팡이류 52건 △환형동물류 51건 △어류 15건 순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남극세종과학기지 역시 외래종의 위협을 피해가지 못했다. 2010년대 초반까지 단발적 발견에 그쳤지만 2015년 이후 외래종 관찰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당시 세종기지 하계 연구팀은 빠르게 서식지를 추적한 결과, 따뜻한 물이 연중 상시 존재하는 기지 오배수가 주요 서식지임이 확인됐다. 이후 세종기지 측은 △오배수 완전 방류 후 청소 △Trap 설치 등 꾸준한 방역 노력을 지속해 수백 마리씩 관찰되던 외래종을 2020년 이후 사실상 박멸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수년간 극지연구소 김상희 박사(현 한-칠레 남극 협력센터 센터장)가 주도한 ‘온난화로 인한 극지 서식환경의 변화와 생물 적응진화 연구’를 통해 외래종 실태 조사 및 방역 체계를 체계적으로 구축해온 결과다. 세종기지는 현재 남극에서 유일하게 외래종 박멸에 성공한 기지로, 이 성과는 국제남극조약 당사국회의(ATCM)와 남극연구기지운영국장회의(COMNAP) 등 국제 협의체에서 우수 방역 사례로 소개됐다.
김상희 박사는 “간혹 일부에서는 외래종이 한두 마리 정도 늘어도 큰 문제가 없지 않냐고 묻기도 하지만, 남극 생태계는 매우 취약하다”며 “한국이 방역 장비를 통해 국제 공조를 이끌어 내고, 향후 남극을 운행하는 모든 선박과 운송수단에 장비를 설치해 관광객들에게 남극의 가치와 환경보호 의식을 고취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긴장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각다귀와 나방파리 같은 외래 곤충은 곤충이 거의 사라진 남극 대륙에서 고유종과 서식지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병원균과 항생제 내성균을 퍼뜨리는 매개체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실제 연구진(김상희 박사팀)은 외래 곤충에서 인체 병원균을 확인하기도 했다. 세종기지 주변에 국한된 위협이 기후변화와 맞물려 야외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남극 크루즈 관광… 파괴의 씨앗
최근 남극은 단순한 연구와 탐험의 대상에서 벗어나, 전 세계 여행자들의 ‘꿈의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빙하와 펭귄 서식지, 눈 덮인 산맥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만 그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 크루즈 관광과 소규모 탐험 프로그램이 증가하면서 남극을 찾는 인파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국제남극관광협회(IAATO)에 따르면 1990년대 8,000여명 정도에 해당하던 남극 관광객이 최근 들어 12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시기 일시적으로 관광객이 주춤했지만, 재개 이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남극 관광 상품도 다양해지고 있다. 단순히 크루즈에서 남극의 환경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디악을 타고 이동하거나 캠핑·마라톤 등 다양한 체험을 병행하는 상품이 생겨났다.
크루즈 관광은 단순한 관광의 차원이 아니라, 남극 생태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행위다. △배가 해안에 접근하는 행위 △승객들이 상륙하며 남기는 발자국과 폐기물 △연료 배출과 소음 등은 미세하지만 지속적으로 생태계에 영향을 준다. 특히 펭귄 번식지나 민감한 조류 서식지 주변에서는 작은 흔적 하나도 장기적으로 번식과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관광객의 발길과 배 움직임은 남극의 얼음을 조금씩 흔들고, 눈 속 미세 플라스틱과 유기물 잔류는 토양과 해양 미생물에 변화를 일으킨다. 일부 전문가들은 “남극 크루즈 관광이 늘어나면서, 인간이 의도치 않게 파괴라는 씨앗을 남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외래종 유입 △토양 변화 △먹이사슬 교란 등 장기적 환경 문제와 연결될 수 있는 작은 씨앗이다.
세종기지를 비롯한 선도적 외국 기지들은 연구자를 대상으로 외래종과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교육하며, 방역 장비 설치와 모니터링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관광 산업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남극을 찾는 여행자들의 호기심과 흥분은 곧 남극 생태계에 남는 흔적이 되고,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는 작은 폭풍으로 번진다.
남극 크루즈 관광과 외래종 문제는 상호 연결돼 있다. 인간의 발길이 닿는 순간 자연은 더 이상 순수하지 않다. 연구와 보존, 탐험과 관광이 얽힌 균열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심은 씨앗이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칠지 깨닫게 된다. 남극의 변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간 선택의 무게와 기후변화가 만든 균열을 보여주는 증거다. ‘핫한 남극’을 지키는 길은 결국 ‘쿨한 선택’을 하는 인류의 몫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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