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정소현·이미정·박설민·권신구 기자 이제는 기후적응 시대다. ‘핫한 남극’에 담긴 메시지는 우리 삶에 성큼 다가와 있지만 여전히 ‘쿨한 한국’의 인식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따뜻해진 기온은 남극의 빙하를 녹게 했고, 펭귄의 서식지를 흔들었다. 또 외래종의 유입과 인간의 이기심은 남극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다. 한국의 바다도 예외가 아니다. 뜨거워진 바다는 어민의 삶을 위협하고, 우리의 식탁과 집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 적응의 씨앗, 기후변화에 맞선 어민들
남극은 여전히 춥다. 하지만 빙하가 녹고 생태계가 흔들리는 변화 속에는 뜨거운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 때문에 먼 지역의 일이 아닌 셈이다. 이제는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의 바다 역시 몇 해 전부터 심각한 변화를 겪었다. 지난해 발생한 고수온 현상은 어민들의 삶에 직격탄을 날렸다.
동해의 오징어가 서해에 나타났고, 제주의 소라는 강원도로 이사를 갔다. 제주의 한치와 갈치는 사라진 지 오래고 육상 양식으로 안전할 것 같았던 국민 횟감인 광어도 바다 고수온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또 남해 통영의 자랑이었던 ‘바다의 붉은 꽃’이라 불리는 멍게는 지난해 양식장에서 97%나 집단폐사했다. 조피볼락, 넙치 등으로 유명한 거제도 2,462만 미가 폐사하면서 38억9,600만원의 재산상 피해가 발생했다.
변화는 두려움을 주지만, 적응을 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한다. 유례없는 바다 고수온 현상으로 삶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시사위크 취재팀이 만난 어민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어민들은 기후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빠르게 모색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통영의 멍게 양식을 위한 심해어장 개발이다.
심해어장은 말 그대로 좀 더 깊은 바다에서 멍게를 양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멍게는 주로 얕은 바다인 10~20m 깊이의 바다에서 양식한다. 따라서 표층수온이 높을수록 폐사 확률이 높다. 지난해 남해는 8월부터 10월까지 고수온 특보가 발령되면서 고수온에 취약한 어종들은 피해가 심각했다. 때문에 어민들은 수심 25m 이상의 심해어장을 개발해 기후변화에 따른 고수온 피해를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지난해 거의 모든 멍게가 고수온의 영향으로 폐사했지만 깊이 30m에 위치했던 도장포지역 어가의 멍게는 약 4,000봉이 살아남았다. 또 수심 30m에서 멍게를 기르는 강원도 지역 양식장도 고수온의 영향이 비교적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태형 멍게수하식수협 조합장은 “갈수록 기후변화가 심해지면서 고수온으로 인한 멍게 양식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지만, 어민들 스스로 대응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제시는 어민과 협업해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쥐치’ 양식이다. 쥐치는 고수온에 잘 버티며 성장 속도가 빠르고, 질병에 강해 폐사율이 낮다.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형 어종으로 평가받는다. 또 그물에 부착된 이물질을 먹으며 성장하기 때문에 양식장 관리에도 유리하다.
이에 거제시는 민간 어민과 협업해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어민이 양식 품종을 변경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어종을 양식하기 위한 배경지식부터 기반 시설에 이르기까지 비용을 포함한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또 양식에 성공해 시장에 내놓는다고 해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어종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과 더불어 가격과 맛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므로 양식 어종의 변경은 민감한 사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맞서 상당히 용기 있는 도전을 하는 셈이다. 변광용 거제시장은 “기후변화에 대한 수산분야 상황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지만 지방정부 차원에서 대비를 하기 위해 노력중이다”며 “시범사업이 성공하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시범사업으로 쥐치 양식에 뛰어든 박정근 대표는 “요즘 기후변화로 해수온이 예전보다 많이 상승해 쥐치들의 이동경 로가 바뀌었는지 바다에서 직접 잡기는 어려워졌다”며 “하지만 쥐치종 자체는 고수온에서도 잘 버티는 종이라 양식 쪽 쥐치가 주목받고 있어 앞으로 수산업의 주요 어자원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 바다숲과 적응, 위기 속에 피어나는 희망
어민들의 적응 노력과 함께 바다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함께 하고 있다. 한국수산자원공단(FIRA)은 바닷말 군락을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바다숲 사업’을 2009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해양생물 서식처 회복과 지역 어업환경 개선, 수산자원 관리를 동시에 실현하는 생태계 회복형 정책이다. 2024년 기준 전국 연안 263개소, 347.20㎢에 바다숲이 조성됐으며, 해조류 생체량은 평균 106.5% 증가했고, 종 다양성도 8.5% 늘었다.
최임호 한국수산자원공단 수산자원본부 블루카본전략실장은 “바다숲 조성 후 해조류 생체량과 종 다양성이 크게 높아졌다”며 “생태계 건강성을 회복하고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 한인성 과장은 “이제는 기후대응이 아닌, 기후적응이 필요한 시대”라면서 “다양한 이상기온 현상과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정책-어업현장-연구현장-시민-언론 등 모든 주체 간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어려운 현상들을 이겨나갈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뜨거워진 바다에 어민들은 피하지 않았다. 때문에 심해어장, 쥐치 양식, 바다숲 조성 등 다양한 적응 전략은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피워낸다. 변화는 두렵지만, 도전과 협력이 모이면 미래 바다와 식탁을 지킬 힘으로 자리 잡는다. 어민과 행정, 연구자가 함께 뿌린 적응의 씨앗은 기후변화 시대에도 바다를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다.
우리나라의 기후 거버넌스 역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환경부를 중심으로 산업·에너지 정책과의 연계를 강화해 추진돼 온 기후 대응 정책은 9월 26일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로 한층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구조를 갖추게 됐다. 앞으로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정책이 상호보완적으로 운영되면서 현장의 적응 노력과 정책적 전략이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추진 전략은 에너지 전환과 산업 구조 혁신을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40%) 달성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 부문 탈탄소화, 산업 부문 배출 감축 기술 도입 등 다양한 정책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감축 목표 달성을 넘어, 기후변화로 위협받는 국민의 삶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필수적 조치이기도 하다.
결국 기후적응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남극의 빙하가 녹고 바다가 뜨거워진 지금, 어민들의 생존 전략과 정부의 정책적 대응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적응하며 협력할 때, 우리는 기후변화 속에서도 바다를 지키고 식탁을 지키며 미래를 살아갈 수 있다. 이제 남극과 한국 바다가 함께 전하는 경고와 희망을 읽고 행동할 시간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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